[한스경제=강상헌 기자] “축구의 박지성(44), 손흥민(32·토트넘 홋스퍼), 피겨의 김연아(34)처럼 저도 양궁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5개)이자 남자 양궁 세계랭킹 1위에 오른 김우진(32·청주시청)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묻자 나온 답변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우진은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꿈에 닿기 전까지 스스로 은퇴할 생각은 없다. 저는 아직 32살이다”라며 “2028년 로스앤젤레스(LA)는 물론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선수 생활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도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파리의 남자
김우진은 이날 본지가 주최한 K-스포노믹스 대상 시상식에서 대한체육회장상을 받았다. 그는 “큰 상을 받아서 매우 기쁘다. 아울러 한국 스포츠의 미래에 대한 지속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한 강의 덕분에 체육인 중 한 명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우진은 올해 연말이 가장 바쁜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다. 지난 8월 막 내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 양궁 최초 3관왕(개인전·단체전·혼성 단체전)에 등극한 덕분이다.
약 3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파리의 기억은 생생하다. 김우진은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브레이디 엘리슨(36·미국)과 펼친 슛오프 접전은 가끔 자다가도 생각난다. 마지막 5세트에서 먼저 제가 10-10-10을 쐈다. 승리를 확신했다. 그런데 엘리슨은 세계적인 선수답게 압박감을 이겨내고 실력을 증명했다. 결국 슛오프로 갔다”며 “긴장이 많이 됐다. 감독님께서 저보고 ‘너 김우진 아니냐. 믿고 쏴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과감하게 쐈고, 그게 효과적이었다. 결과적으로 4.9mm 차이가 났는데 이는 빨대 정도 간격이다. 만약 제가 반대 상황이었다면 아찔하다”고 떠올렸다.
김우진은 올림픽에서 통산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역대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그는 “이번 올림픽은 욕심 없이 준비했다. 마음을 비웠다. 단체전 금메달만 가장 큰 목표로 잡았다”면서 “그런데 생애 첫 개인전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고, 한국 최다 금메달리스트까지 등극했다. 잊지 못할 대회가 될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과녁 앞에선 냉정, 평소엔 수다쟁이
김우진의 별명은 ‘수면 쿵야’다. 자면서 활을 쏜다는 의미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김우진의 낮은 심박수가 화제가 됐다. 분당 심박수(bpm) 70~90을 유지했다. 과녁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김우진은 “긴장된 그 순간을 인정한다. 받아들이면 긴장이 풀린다. 상대 선수가 저를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양궁은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본인이 온전히 평온한 상태가 돼야만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 고요하고 준비된 게 아닌 요동치는 상황이 나오면 절대로 좋은 경기력이 나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우진은 가족과 주변인들 사이에선 ‘투 머치 토커’로 불린다. 양궁 앞에서 섰을 때와 완전히 상반된 별명이다. MBTI(성격유형검사)도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타입인 ESTP다. 그는 “과묵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화면에는 그렇게 비치는 것 같다. 저는 사실 말이 좀 많은 편이다. 아내가 투 머치 토커라고 부를 정도다”라며 “외향적이라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취미도 캠핑이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눈을 밟는 것도 좋아해서 이번 겨울에는 함께 캠핑을 꼭 가려고 한다”고 미소 지었다.
◆양궁 GOAT
파리 올림픽 3관왕에 오른 김우진은 지난 10월 2024 현대 양궁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승하면서 엘리슨을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등극했다. 이제는 명실상부 ‘양궁 GOAT(Greatest Of All Time)’ 반열에 올랐다. 그는 “부끄럽긴 하지만 양궁 GOAT으로 불러도 될 것 같다. 오랫동안 갈망했던 칭호다”라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GOAT이라는 게 역대 최고의 선수를 칭하는 것이 아닌가.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꿈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고 전했다.
김우진은 올림픽 금메달, 세계랭킹 1위 등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다 누렸다. 하지만 아직 은퇴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그는 “다들 ‘이제 은퇴할 때 되지 않았나’라고 하신다. 제가 노안인가 보다”라면서 농을 던진 뒤 “저는 아직 32살이다. 스스로 은퇴할 생각이 없다. 양궁 발전을 위해선 저를 이어갈 후배들이 중요하다. 이 선수들이 저를 이겨서 좋은 선수가 돼야 한다”며 “어린 선수들에게 저에게 도전해서 깨부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는 정상에서 스스로 내려갈 생각은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목표는 없다. 그것이 양궁 선수 김우진이 걷는 길이다. 그는 “선수 생활하는 동안은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올림픽에서 메달 몇 개를 획득하자는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두진 않는다”라며 “목표가 있으면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그 성취에 다다르면 딱 거기서 멈춰버릴 것만 같다. 전 언제나 열린 결말을 좋아한다. 양궁 선수 생활도 마찬가지다”라고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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