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10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계엄에 관여한 국방부와 합참 주요 당국자와 작전부대 지휘관 등 고위 장성을 포함한 50여명의 현역 군인이 출석했다.
이날 지휘관들은 의원들의 질타에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 특히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반란인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5.18 이후 45년간 정치적중립을 지켜오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질타에 이상현 1공수여단장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군에 국회의원 체포를 직접 지시한 정황도 확인됐다.
당시 지시를 받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하셨다"고 폭로했다.
이밖에 곽 전 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모두 이달 1일에 계엄 계획을 알고 있었던 정황도 확인됐다. 이로써 이번 비상계엄은 사전에 준비된 내란임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날 국회 국방위에는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에 사전 기획, 포고령 작성 등에 핵심 인물인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은 검찰 조사를 이유로 불참했다.
여 사령관은 전날 국방부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방첩사는 기무사 해체 트라우마로 부대원 모두가 계엄령에 매우 민감하다. 사령관이 미리 알고 준비했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모두 노출된다"며 사전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상현 제1공수여단장 "대테러작전으로 알아.. 총 뒤로 메고 민간인 접촉 말라 지시"
의원들 군 정치개입 질타 "45년 정치중립 물거품..참담하다"...5.때 공수여단, 특전사단 광주 투입
이날 현안질의에 출석한 제1공수특전여단 이상현 여단장은 김현태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 단장의 답변을 들으며 눈물을 닦아냈다.
이 여단장은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국회 장악 등의 명령을 받고 현장에서 계엄군을 지휘했으며, 당시 "대테러 작전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 여단장은 사태 당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실탄을 지역대장, 대대장이 통합해서 가져가라'는 지시를 했었다며 "저는 '실탄과 공포탄도 필요 없다, 그것은 주둔지 탄약고에 보관하고 내 지시가 있을 때 (불출 등을) 추진하라'고 했다"면서 상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7일 KBS와의 인터뷰에서도 당시 곽 사령관의 지시를 듣고 군사 상황이 아닌 걸로 짐작했고, 대원들에게 공포탄도 가져가지 말 것을 지시하며 국회로 출동시켰다고 밝힌바 있다.
이 여단장에 따르면 당시 그는 국회에 진입한 대대장으로부터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대치하고 있다고 보고 받고 부당한 계엄 명령임을 직감하고 "총구를 민간인을 향해 겨누지 마라" 등의 지시를 내렸다.
또, 국회 인근에서 대기하던 1공수여단에게는 버스로 이동해 대기할 것을 지시했고, 이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오전 1시 10분쯤 사령부 참모장으로부터 부대 철수 준비 지시가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국방위원들, 군인들에게 질타 쏟아내 "45년 지켜오던 정치적 중립 물거품 됐다"
그나마 군 지휘관들의 민간인에 대한 무기사용 저지 지시로 최악의 상황을 면했으나, 국방위 여야 의원들은 무장군인의 정치개입과 국회 진입, 민간인에 무장 진압 등에 질타를 쏟아냈다.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서 (12·12) 5·17 이후 45년간 지켜져 오던 군의 정치적 중립의 전통은 이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정말 참담하다”고 말하자 이상현 제1공수여단장은 참회의 눈물을 또다시 흘렸다.
3성 장군 출신인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이날 "선배로서 가슴 아프고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든다"며 "저도 군 생활 때 계엄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안 했고, (계엄에 대한) 스터디 자체도 안 했다. 여러분들이 그 희생양이 됐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군 투입 명령을 '김용현 전 장관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자 "마치 이등병이 상병·병장한테 명령받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창피하지 않나"라며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이다. 무슨 명령을 받아서 움직였다고 하나. 그럼 뒤에 있는 부하들은 뭐가 되나"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우리 군이 문민통제를 지향하는 데 있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란 이 문구만큼 좋은 게 없다"며 "우리 군은 국민들한테 총부리를 겨눴다. 그게 실탄이 장전됐든 안 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국방위원장은 "오직 명령만을 수명한 채 출동했던 군인들은 어디로, 왜, 출동했는지도 모르고 나섰다가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한다"며 "군 지휘부는 철저히 수사해서 엄벌에 처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고한 참군인들까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45년전 1979년 12.12와 1980년 5.18 당시에도 무장한 공수여단과 특전사가 광주에 파견되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이와관련 이학송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지난 5일 KBS광주 라디오 '출발 무등의 아침'에 출연 "지금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던 공수특전단 1공수여단이잖아요. 1공수여단, 707특임대, 3공수여단 이렇게 거론되고 있는데 이 공수특전단은 실은 12.12 군사 반란에 가장 앞장섰던 특전사이고, 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것은 3공수여단이다"며 "실은 1공수여단도 전두환 신군부는 파견을 검토했다가 만약 1공수여단까지 광주로 보내면 최정예 부대기 때문에 수도권 초유 사태에 대응이 힘들다고 해서 1공수여단은 차마 투입하지 못하고 대신 20사단을 보낸 것이었다"고 말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尹, 2차례 통화에서 나에게 국회의원 끌어내라 직접 지시" "1일에 계엄 계획 인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 계엄 당일 3일 "김용현 국방장관과 둘이서 현안 논의 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의 가장 핵심은 국회에 무장 계엄군 투입 지시, 무기 사용 지시, 비상계엄 해제를 막기위한 정치인 체포, 구금 지시를 누가 했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10일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현안질의에 출석해 '국회의원이 150명이 넘으면 된다는 지시가 있었냐, 누가 지시했냐'는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국회 본회의장에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특전사) 전투통제실에서 비화폰을 받으면서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인원(국회의원)이 100~150명 넘으면 안 된다는 그런 내용들이 위(국방장관)로부터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었다"고 했다.
앞서 계엄 당일 국회에 진입한 제707특수임무단의 지휘관 김현태 단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곽 사령관에게 1~2분 간격으로 전화가 왔다"면서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곽 전 사령관은 "(당시) 마이크 방송이 켜져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한 내용들이 그대로 예하 부대에 전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 방송이 켜져 있다 보니) 거기(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 공포탄, 테이저건 이런 것들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전파가 됐다"며 "실제 그것은 제가 그것을 사용하라고 지시해서 전파된 것이 아니고 지시받는 내용들이 그대로 마이크 방송으로 전파돼, 예하부대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지시를 받고 제가 현장부대 지휘관에게 지시받은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논의를 하면서 이것은 명백히 제한되고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김 전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앞서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지난 5일 국방위에 출석해 '곽종근 사령관이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을 건의했지만 막았다'고 주장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곽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사실을 언제 알았냐'는 유 의원의 추가 질의에 "TV를 보고 거기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말씀하시고 자막이 나와 비상계엄령이 발령한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어진 거듭된 질의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곽 전 사령관에게 직접 별도의 지시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곽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고 실토한 것이다.
앞서 곽 전 사령관은 지난 6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과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707(특임단)이 이동할 때 '어디쯤 이동하고 있나'라고 한 번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거 이상은 따로 없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곽 전 사령관에게 "윤 대통령과 통화한 것에 대해 당시 상황이 그걸로 끝이었다고 했는데 대통령으로부터 또 전화를 받았죠"라고 '대통령과 2차례 통화사실'에 대해 거듭 물었다.
이에 박 의원의 질의에 곽 전 사령관은 대답을 머뭇거렸고, 박 의원이 "(윤 대통령으로 부터) 전화 받으셨죠"라고 재차 묻자 끝내 시인했다. 곽 전 사령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실 말씀드리기 제한된다"라고 했다.
박 의원은 "한번 더 묻겠다. 그래야 속죄가 된다. 받으셨나"라며 "제한된 내용이 무엇인가. 두번째 전화받은 내용을 부탁드린다. 온국민이 다 보고 있다. 그것만이 곽 사령관의 책임이 감경될 수 있는 요소다. 뭐라고 대통령이 이야기했나"라고 질의했다. 그러나 곽 전 사령관은 "말씀드리기 제한된다"라고만 답했다.
이후 박 의원은 오후 속개된 국방위 전체회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곽 전 사령관의 양심고백을 공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계엄 당일 자신에게 두 번째 건 전화에서 '국회 내에 있는 의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끄집어내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아직 의결정족수가 안됐다'라고도 언급했다고 곽 전 사령관은 진술했다.
곽 전 사령관은 그러나 '사람들이 무수히 다치고 다 죽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병력의 이동을 중지시키고 현 위치를 고수하고 들어가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박 의원은 "곽 사령관은 비상계엄 이전인 1일에 이미 계엄에 대한 사전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다"라며 "계엄 당일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등을 알고 있었지만 휘하 여단장들이 공범이 될까봐 차마 이를 사전에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비상계엄 관련자들끼리 말이 맞춰져 있어 수사기관에는 이 내용을 진술하지 않았다고 한다"라며 "곽 사령관이 군형법상에 군사 반란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국민 신고'를 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전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계엄 당일 김용현 국방장관과 둘이서 현안 토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박 총장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계엄 당일(3일) 오후 4시에 어떤 일정이 있었느냐"고 묻자 "현안 토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안 의원이 '현안 토의를 누구와 했느냐'고 추가 질의를 하자 "(김용현 전) 장관님하고 저하고..."라고 답했고 안 의원이 '(현안 토의를) 둘이 했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방첩사 참모장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1일부터 간부들에게 대기 지시"
방첩사 수사단장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 부터 정치인 직접 체포 구금 지시 직접 받았다"
이날 국방위에선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 계엄 이틀 전인 지난 1일부터 방첩사령부 간부들에게 '대기 지시'를 내린 정황도 파악됐다. 이날 국방위에 출석한 이경민 방첩사령부 참모장은 여 사령관이 지난 1일 주요 간부들에게 지시 대기를 하달했다고 밝혔다.
대기 사유는 북한 도발이었다. 이 참모장은 "여 사령관은 북한의 오물 풍선 상황이 심각하다며 각 처장들과 실장들에게 음주를 자제하고 통신축선상 대기를 철저히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달 28~29일 이후 대남 풍선을 띄우지 않았고, 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은 지난달 5일이 마지막이었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해군 준장)은 여 사령관이 계엄 당시 정치인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구금 지시를 직접 했다고 폭로했다.
앞서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이 여 사령관으로부터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체포 대상자 명단을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지만 현역 군인이 국회의원 체포 사실을 밝힌 것은 계엄사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김 방첩사 수사단장은 '저를 포함해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받았냐'는 조국혁신당 조국 의원의 질의에 "구금시설과 관련된 체포와 지시는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했다.
이어 "처음 지시받기로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B1벙커 안에 구금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며 "여 사령관 밑에 있는 이 실장(이창엽 비서실장)을 통해 직접 수방사를 가서 B1벙커를 확인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B1 벙커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관할 지휘통제 벙커로, 유사시 우리 군의 실질적인 전쟁 지휘부 역할을 맡는 군사상 핵심 시설이다.
"선관위 서버 복사 및 확보도 여인형이 지시.. 법무관들은 강력 반대"
계엄 선포 당일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선관위 전산실의 서버 복사 및 확보 지시와 관련된 증언도 나왔다.
정성우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은 이날 '선관위 서버를 복사하고 통째로 들고 나가라는 지시는 누가 내린 것인가'라는 질의에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제게 구두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첩사 요원들이 선관위로 투입하기 전에 서버 확보 행위가 법적 문제가 없는지 사전 검토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정 처장은 "5층 법무실에서 3일 오전 11시40~50분부터 30여 분간 팀장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면서 토의를 했다"며 "법무관 7명 전원이 계엄법을 포함해 각종 자료를 들고 서서 현 상황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함께 토의한 법무관 7명이 선관위 서버 복사 및 확보에 강력히 반대했고, 자신도 법원이 위법수집 증거로 볼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처장은 법무관의 '강력 반대' 의견을 듣고 선관위 현장으로 이동 중인 부대원들에게 "절대 건물에 들어가지 말고 원거리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실제로 4일 새벽 1시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출동 병력은 부대로 복귀했다.
계엄 선포 당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선관위에 병력 파견을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 '과천 정부청사 인근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로 선관위에 영관급 요원 10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문 사령관은 "(계엄 선포) 당일 오전 10~11시쯤 지시를 받았다고 기억한다"며 "첫 지시는 '해당 주에 야간에 임무를 부여할 수 있으니 1개 팀 정도를 편성해서 대기시켜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지시 이후 '당일 야간에 임무를 줄 수 있다'는 지시를 받았고, 그 지시를 받을 당시에 '과천 정부청사 인근에 한 21시 어간에 대기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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