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일보] 이현수 기자 = 2021년 12월 10일 오후 2시 반쯤 서울 송파경찰서 형사들은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아내의 비명이 들렸다. 빨리 가 달라"는 112 신고를 받고 잠실동 모 빌라로 출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형사들 눈에, 거실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B 씨(1972년생)와 목 부위에 피를 흘린 채 엎어진 C 군(2008년생)이 들어왔다.
형사들은 급히 119를 불러 B 씨를 이송했지만 그날 오후 3시 30분 B 씨는 숨지고 말았다. 목 부위에 깊이 12cm나 되는 자상을 입은 아들 C 군은 응급수술을 받아 다행히 1주일 뒤인 12월 17일 의식을 회복했다.
피해자 남편과 딸, 한목소리로 범인은 "이석준 그놈"
다급하게 집으로 달려온 B 씨의 남편과 딸 A 씨(2000년생)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그놈 짓이다"고 외쳤다. 형사들이 "누구?"라고 묻자 아빠와 딸은 한목소리로 "이석준(1996년생)"이라고 지목했다.
이석준을 범인으로 특정한 경찰은 CCTV와 핸드폰 위치추적 등을 통해 이준석 행방을 찾는 한편 사건 발생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점을 볼 때 멀리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 뒤 경찰은 사건을 저지른 B 씨 집 바로 옆 빌라 건물 빈집 장롱 속에 숨어 있는 이석준을 발견, 체포해 압송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오빠 이석준…엄마와 불화 겪던 A를 천안으로 불러 동거
A 씨는 2021년 8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이석준과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다가 게임에 빠진 딸을 못마땅하게 여긴 엄마를 피해 10월 초 집을 나왔다.
이 사실을 안 이석준은 '부담 갖지 말고 있을 만큼 있어라'며 A 씨를 자신이 머물고 있던 천안 원룸으로 불러 동거에 들어갔다.
'이제 그만 돌아와라'는 가족 설득에 고민하던 A 씨는 2021년 12월 2일 잠실 집으로 가 부모를 만난 뒤 5일 천안으로 와 이석준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통보했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A 씨 말에 분노한 이석준은 강제로 성폭행하면서 휴대폰을 이용해 동영상 촬영했다.
다음날인 12월 6일 아침 이석준은 A 씨에게 '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동영상을 퍼뜨리고 죽여버리겠다. 여자 친구인 척하라'고 협박, 자기 부모가 살고 있는 경북 청도까지 A 씨를 데리고 내려갔다.
이석준, 부모에게 '여자 친구'라며 A 씨 소개…감시 소홀 틈타 친구에게 'SOS' 요청
A 씨는 이석준 협박에 못 이겨 청도까지 가 그의 부모에게 인사했다. 그가 잠시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A 씨는 게임에 접속,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SOS를 쳤다.
친구는 이 사실을 A 씨 부모에게 곧장 알렸고 B 씨는 경찰에 '딸이 감금됐다'며 신고했다.
그 사이 이석준은 A 씨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겠다며 대구 수성구의 한 와인바로 이동했고 위치추적을 한 경찰도 와인바에 도착했다.
A 씨는 현장에서는 이석준이 무서워 '감금된 적 없다'고 했지만 경찰서로 간 뒤 이석준과 분리되자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석준을 '성폭행' 혐의로 신고하겠다고 했다.
끔찍한 범행 막을 기회 놓친 경찰…휴대폰 순순히 제출한 이석준에게 속아 입건후 귀가조치
경찰 추궁에 이석준은 '성폭행한 적 없다' '동영상도 촬영한 적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휴대폰 제출 요청에 선뜻 응했다.
경찰은 △ A 씨와 이석준 진술이 엇갈린 점 △ 이석준이 순순히 휴대폰을 제출한 점을 볼 때 긴급체포까지 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 입건만 한 채 귀가 조치했다.
A 씨는 급히 내려온 부모와 함께 서울로 돌아간 뒤 12월 7일 경찰로부터 신변 보호 대상자로 지정돼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풀려난 이석준, A 씨 주소지 찾았다가 허탕…흥신소에 의뢰
천안으로 돌아온 이석준은 12월 7일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성폭행 혐의 입건에 따른 법률 상담을 한 뒤 오후엔 A 씨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인터넷상으로 검색, 주변 지리를 익혔다.
다음날인 12월 8일 흉기를 챙긴 이석준은 렌터카를 타고 A 씨 주소지를 찾았지만 허탕을 쳤다.
이에 이석준은 12월 9일, 50만 원을 주고 흥신소에 'A 씨 현주소를 알아달라'고 부탁해 '잠실동 모 빌라 000호'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곧장 그곳으로 갔다.
살해 결심 만반의 준비…A 씨 거주 여부 확인을 위해 화재경보기 누르기도
이석준은 12월 9일 A 씨 집으로 가 건너편 빌라 주차장에 렌터카를 주차한 뒤 전기충격기, 밧줄, 마대, 밀가루, 대형 망치를 구입했다.
또 A 씨가 진짜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재경보기를 일부러 작동, 빌라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을 지켜봤다.
A 씨 모습 확인을 마친 뒤에는 빌라 주민 뒤를 따라가 슬쩍 옆눈으로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알아냈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석준은 다음날 범행키로 하고 일단 천안으로 돌어가 잠을 청했다.
택배기사 가장해 초인종…문 열리자 다짜고짜 흉기, 엄마 보호하려던 13살 꼬마까지
12월 10일 오후 2시 20분 잠실동 빌라에 다시 온 이석준은 '무조건 다 죽이겠다'고 결심, A 씨 집으로 올라가 '택배가 왔다'며 초인종을 눌렀다.
당시 남편과 통화하던 B 씨는 '택배요'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가 다짜고짜 흉기를 휘두르는 이석준에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쓰러졌다. C 군은 엄마를 보호하려 달려갔다가 이석준의 흉기에 찔리고 말았다.
남편은 휴대폰을 통해 아내의 비명과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석준에 50만 원을 받은 흥신소 관련자 5명, 2만 원에 개인정보 넘긴 구청직원
경찰은 이석준에게 A 씨 주소를 알려 준 흥신소 관련자 5명과 이들에게 매월 200만 원~300만 원씩 받고 개인정보를 넘긴 수원 모 구청 직원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흥신소 관계자들은 징역 1년 형에서 4년 형을 받았으며 구청 공무원은 2023년 1월 6일 대법원에 의해 징역 5년 형을 확정받았다.
이석준이 A 씨 사는 곳을 알려달라며 준 50만 원은 3번의 하청(최초 의뢰받은 흥신소 직원 D, 50만 원 중 13만 원으로 다른 흥신소 직원 E에게 의뢰→ E는 그중 10만 원 주고 또 다른 흥신소 F에게 의뢰→ F는 공무원 G에게 2만 원 지급)을 거쳐 A 씨 주소가 전달됐다.
구청 공무원 G는 단돈 2만 원을 받고 살인범에게 A 씨 주소를 넘긴 것이어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최초로 머그샷 신상 공개자가 된 이석준…보복살인, 살인예비 등 7개 혐의로 기소, 무기징역 확정
경찰은 2021년 12월 14일 이석준 신상과 함께 머그샷을 공개했다. 머그샷으로 얼굴을 드러낸 건 이석준이 첫 사례가 됐다.
다만 이석준은 2021년 12월 17일 검찰로 송치될 때는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이석준을 법률상 보복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재물손괴, 감금, 주거침입 등 7개 혐의로 구속 기소한 검찰은 2022년 5월 17일 1심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그해 6월 21일 1심인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이종채 부장판사)는 "범행 방법이 잔혹한 점,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한 만 13세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점, 유가족이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볼 때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석준에게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대체로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에 유족들이 격렬하게 항의했고 검찰도 즉각 항소했다.
하지만 2022년 12월 15일 2심인 서울고법 형사9부(문광섭 박영욱 황성미 부장판사) 역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석준은 2023년 4월 27일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에 의해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Copyright ⓒ 내외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