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믿는 만큼 커지는 일

[엘르보이스] 믿는 만큼 커지는 일

엘르 2024-12-10 18:01:36 신고

ⓒDavid Palma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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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임팩트 투자사에서 액셀러레이터로 일하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을 꿈꾸는 그들을 보며 ‘자신이 믿는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변하는 세상과 맞지 않는 낡은 시스템을 대체하거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공백 상태인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정해진 사안에 반대하거나 요구하기만 하는 것과는 다르게 ‘0’부터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몹시 어려워 보이는 일을 진심으로 잘될 거라고 믿는 얼굴들을 보면 좀 부럽기도 했다. 언젠가 긴 호흡으로 풀어보고 싶은 문제가 생기거나 해결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질문을 만난다면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개인의 영향력을 연결해 더 나은 의사결정권자를 낳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그런 질문이 생겼다. 정치인에게 실망하기도 지겹던 때였다. 이 중요한 의사결정권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좀 더 말이 통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젊은 정치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은 것도 원인이지 않을까? 2018년 지방선거에 만 39세 이하 후보는 7%, 당선자는 6%에 불과했다. 알고 보니 정당 중에 인재 성장 시스템을 갖춘 정당은 없었다. 인재 팀이 없으니 선거 때마다 내부에서 실력 있는 인물을 찾기보다 새로운 인물을 찾는 데 치중했다. 그래서 그것부터 만들기로 했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둔 2021년 초, 만 39세 이하 젊은 정치인(이하 젊치인)을 키우는 초당적인 에이전시 ‘뉴웨이즈(Newways)’를 만들고 이 변화를 함께 만들 2030 유권자를 모았다. 동시에 좋은 의사결정을 하려면 의사결정권자가 만들어지는 낡은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 시스템을 다양한 개인의 참여로 만들고 싶었다. 동료와 함께 둘이서 시작한 일에 1만여 명의 사람들이 힘을 모았고, 그렇게 1년 4개월간의 실험은 여러 운과 노력이 쌓여 138명의 후보자, 40명의 당선자를 배출하고 7개의 정당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젊치인’ 당선자도 2018년 전체의 6%에서 10%로 늘어났다!
그러나 주류 시스템을 대체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지방선거에서 ‘젊치인’들이 후보가 되고 당선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데 집중했으니 어쩌면 시스템이라기보다 해결책에 가까웠다. 제대로 된 인재 성장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조직 형태도 임의 단체에서 법인으로 바꿨다. 더 이상 우리 마음대로 조직을 없앨 수 없는 긴 호흡의 비전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이었다. 장기 비전의 초안이 완성될 즈음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조언을 구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더니 그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문제’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말했는지 알아요? 그 단어를 빼고 뉴웨이즈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답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새로운 모델인 만큼 문제 정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이 일이 지금 정치 구조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걸 설득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다시 답변이 돌아왔다.

ⓒCokiyette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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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설득하지 말고 무엇을 같이 믿자고 설득해야죠.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요.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죠. 믿음을 세워야 해요. 사람들이 얼마나 문제인지 알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해도 뉴웨이즈와 같이 꿈꾸고 싶게 만들어야 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8년 전에 만난 대표들이 떠올랐다. 이제 막 시작한 단계임에도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거라고 말하는 선언에 가깝던 그 언어를 듣다 보면 이미 그런 세상에 도착한 것처럼 설레곤 했다. 정교한 전략이 전부는 아니다. 관성대로 움직이는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세계, 그 세계를 더 크게 상상하고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 함께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 전략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미래를 상상한다. 그 미래는 총선 다음 날이 되기도 하고, 2030년이나 2050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미래를 먼저 본 목격자처럼 당연히 다가올 미래라고 믿고 일한다.
요즘 뉴웨이즈를 ‘정치를 제대로 하는 젊치인 에이전시’라고 소개한다. 매일같이 나오는 정치 뉴스들은 다가올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책임으로 싸운다. 딱히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지금 정치가 문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우리나라는 아이가 가장 적게 태어나고, 어른이 스스로 가장 많이 죽는 나라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 알아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치가 가진 힘을 믿고, 정치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세계를 믿는다. 우리가 믿는 세계는 정치인이 다양한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를 두고 서로 머리를 맞대는 세계, 유권자는 날씨를 확인하듯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정치인을 발견하고 응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세계다. 이 믿음이 구체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매일 해상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가 가고 싶은 미래는 믿어야 시작할 수 있고, 믿는 만큼 커진다. 그리고 믿는 사람이 많아져야 현실이 된다. 우리에겐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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