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갑질' 미워도 '고객기만' 화나도 소비자 선택지는 '독과점 대한항공'

'땅콩갑질' 미워도 '고객기만' 화나도 소비자 선택지는 '독과점 대한항공'

르데스크 2024-12-09 19:02: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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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업계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돌입한 가운데 소비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독과점 부작용'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을 둘러싼 소비자기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벌써부터 독과점 폐해의 징조가 보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소위 메이저 항공사라 불리는 두 기업이 합병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지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라며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이은 소비자기만 논란에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메가 항공사 탄생 부정 여론 확산

 

9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의 오키나와행 비행기가 기체 결함과 기상 악화 등으로 인해 결항되면서 고객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초 오전 8시 5분 이륙 예정이던 비행기는 2시간 가량 램프 리턴(주기장으로 돌아오는 사태)을 한 뒤 기체 결함으로 출발이 지연됐다는 방송과 함께 승객 전원에게 하차를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하차 직후 1인당 2만원 상당의 '밀 바우처'를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항공사업법 제 61조에 따르면 항공운송사업자는 운송 불이행 및 지연 등이 발생할 시 항공교통이용자를 위한 피해구제 절차 및 처리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도록 규정해야한다. 단 기상악화와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유를 항공운송사업자가 입증하는 경우에는 보상 책임이 면제된다. 기체결함에 따른 결항은 피해보상이 가능하지만 기상악화에 따른 결항은 피해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통상 피해보상은 식사 및 숙박비 정도로 한정된다.

 

▲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도착층 전광판의 결항 및 지연 안내문.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그런데 이날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한 기상 악화까지 덮치면서 결국 비행기는 결항되고 말았다. 대한항공이 고객들에게 비행기 결항 사실을 알린 시각은 당초 예상 이륙시간 보다 7시간 넘게 지난 오후 3시30분이었다. 당시 고객들은 오전 8시경 공지했던 기체 결함을 이유로 항공사에 배상 책임을 요구했지만 대한항공 측은 항공기 취소의 원인을 기체 결함이 아닌 기상악화라고 주장하며 보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초 기체 결함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며 이미 식사비 성격인 '밀 바우처'까지 제공했음에도 결항의 원인을 '기상악화'라고 주장하자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밀 바우처'를 제공한 것 자체가 이미 출발 지연이 항공사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변하자 태도까지 바꿨다는 이유에서다.

 

피해 고객들에 따르면 심지어 대한항공 측은 승객들을 향해 직접 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 및 대체 항공편을 알아보라고 안내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까지 보였다. 통상적으로 항공기 결함으로 결항됐을 시 승객들에게 지급되는 '엔도스(타 항공사 비행기를 타도 좋다는 승낙)'도 제공되지 않았다.

 

비슷한 일은 지난달에도 있었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의 한국행 비행기가 눈으로 인한 자연재해로 인해 결항되자 일부 고객들은 말레이시아항공을 대체 항공편으로 선택했다. 당시 대한항공 측은 말레이시아항공 탑승 고객들에게 무료 수하물 25kg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항공 측은 무료 수하물과 관련된 사전 안내를 전달 받지 못했다며 약 20만원 수준의 추가 요금을 요구했다.

 

▲ 인천국제공항 계류장 내 대한항공 비행기와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사진=뉴시스]

 

대한항공을 둘러싼 고객 기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벌써부터 소비자들 사이에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합병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업계 양대산맥'이라 불리며 경쟁 관계에 놓인 두 기업이 합병함에 따라 소비자들에겐 선택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항공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마땅한 대체제가 없다는 의미인데 이를 대한항공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소비자들의 중론이다.

 

직장인 김인섭 씨(31·남)는 "대한항공은 과거 '땅콩갑질' 사건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소비자기만 논란까지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때마다 아시아나 항공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았다"며 "그런데 앞으로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나 같은 회사나 다름없게 되다 보니 기업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대안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독과점체제가 되면 대한항공이 더욱 기고만장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독과점 폐해를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단순히 기우' 수준을 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얼마 전 벌어진 사례만 보더라도 소비자들이 충분히 분노할만한 사안이다"며 "통상 이런 일이 발생하면 고객들은 다른 항공사를 찾기 마련인데 앞으로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독과점 폐해를 막을 만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내용과 관련해 대한항공 관계자와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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