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년 연말이면 국민들 사이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있다. 바로 '올해의 사자성어'다. 매년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상대로 교수신문이 추천과 투표를 거쳐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당대 사회적 갈등, 경제적 위기, 정치적 부조리 등 시대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올해는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라는 뜻을 가진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됐다. 올해 유난히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을 비롯해 정치권에서 다양한 논란이 발생했던 만큼 해당 사자성어가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자성어는 지난 3일 비상 계엄령 선포 이전에 투표가 진행됐기 때문에 해당 사태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친인척 보호, 정부·기관장의 권력 남용, 검찰독재, 굴욕적인 외교, 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국민의 삶에 대한 무관심, 명태균·도술인 등으로 인해 나라가 분열된 점이 고려됐다.
2023년에는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경제적 양극화와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 지도층의 행태가 도마에 올랐는데,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고 의로움을 잊은 모습이 국민들에게 비판받았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공직자의 개인 투자나 자녀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개인 이익을 핑계로 가족과 친구도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해당 사자성어가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선정됐다. 묘서동처는 공정과 법치가 흔들리고 부정부패 의혹이 만연한 상황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이라 불리는 '부동산'에 불을 지른 것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땅 투기'였다.
엄정한 집행을 해야 하는 공기관이 '투기'에 앞장선 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묘서동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LH 임직원들은 업무상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임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공공택지 예정지를 매입하고 엄청난 시세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행위를 저질렀다. 이는 '부동산 폭등'과 맞물려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간 일반인에게 생소한 사자성어를 선정해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정된 사자성어에 내포된 의미만을 보았을 때는 시의적절하지만 해당 사자성어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에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됐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의미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관용구를 줄인 '내로남불'을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다. 현대 정치판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현대판 사자성어다.
2020년은 코로나 19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도덕적 시비에 빠져 사회 전반에 극심한 피로만 낳게 만들었다. 당시 여야와 진보 및 보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는 물론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을 두고서 사회 도처에 '내로남불' 사태가 불거지기도 했다.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니, 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화난 국민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광장에 나섰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통과됐다.
지난 2015년에는 중동호흡기증후근, 일명 메르스 사태로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기도 했다. 메르스는 발생 15일 만에 격리자만 1500명이 넘길 정도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이에 국민들이 '메르스 공포'에 빠졌지만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메르스 발병 이후 15일 만에 첫 회의를 주최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업무 해결 스타일 자체가 민심을 듣고 보는 것보다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선호하는 스타일 탓이라고 밝혔다. 실제 당시 정부의 안이한 초기 대처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올해의 사자성어로 어리석은 지도자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라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됐다. 메르스 사태뿐만 아니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탑승했던 세월호가 원인 모를 이유로 지난 2014년 4월 침몰했다. 이 사고로 총 29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해양사고 중 3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다.
당시 국민들은 참사가 일어난 것에 애통하며 함께 울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막을 수도 있었던 이 사고인 만큼 어떻게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또한 사고 책임자는 강력히 처벌받기를 원했지만 정부는 은폐했고 회피해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에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라는 의미로, 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의 국정 개입 사건 등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부가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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