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양성을 혐오하는 동물 같다”

“인간은 다양성을 혐오하는 동물 같다”

평범한미디어 2024-12-09 11:54:12 신고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최재천 석좌교수(이화여대)가 지난 11월21일 전남대를 찾았다. 오후 2시 강연인데 대학본부 2층 용봉홀이 꽉 차서 발디딜 곳이 없었다. 좌석이 없어 신문지를 깔고 앉아야만 했다. 역시 석학은 다르구나! 감탄을 했다. 네임밸류 만큼 내용도 알차고 위트도 상당했다. 강연 내내 객석에서 박장대소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서양에서는 환경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통 우파다. 그러나 한국에서 환경 이야기를 하면 좌파로 본다. 그래서 나는 좌파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선일보를 13년 동안 구독했다. 이 신문을 보는 분들은 내가 우파인줄 알고 있다. 사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양파’다

 

최재천 교수의 모습.<사진=최재천 교수 페이스북>

 

이제 강연 내용으로 가보자. 먼저 최 교수는 자연계의 다양성에 대해 풀어내면서 공진화 개념을 설명했다.

 

벌레가 이파리를 맛있게 먹고 있다. 그런데 이파리를 다 먹고 나서는 문제가 생긴다. 자연계는 워낙 다양한 곳이다. 똑같은 식물이 바로 옆에서 다시 자란다는 보장이 없다.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식물과 식물을 갉아먹는 곤충 간에는 굉장히 세밀한 조율 과정이 있다. 그걸 우리는 공진화라고 부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 가면서 함께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 말고 동물세계에서는 오직 약육강식의 법칙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함께 진화한다는 개념이 새로웠다.

 

아무 곤충이 아무 식물이나 먹는 게 아니다. 애벌레는 이파리를 먹고 난 다음 옆에 있는 음식물을 먹어본다. 그러다가 이걸 못 먹겠다 싶으면 길을 떠난다. 자기가 아까 먹었던 이파리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파리가 한 5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인간에게 있어서 5미터는 너무 가깝다. 그냥 몇 발자국만 가면 된다. 그러나 작은 벌레에게 5미터는 거의 9만리다. 벌레가 시력이 좋아서 그 거리를 바로 직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냄새도 맡아보고 하면서 가야 되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린다. 이 시간 동안 애벌레의 먹이인 이파리는 또 작은 이파리를 내면서 생장한다. 자연계에서는 다양성의 다양성을 담보해준다.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강연장의 모습.<사진=윤동욱 기자>

 

자연 법칙은 다양성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설계돼 있다니. 반대로 인간 세계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귀농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 흙을 밟고 직접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우리는 농촌을 목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농업은 자연을 해쳐가면서 일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사짓는 방법은 처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하는 식물 하나를 길러내면서 이 식물을 먹는 곤충을 해충이라고 규정짓고 없애 버린다. 작물을 키우며 다른 식물들이 자라는 가능성을 제거해버린다. 옛날에는 분명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 뒤엉켜 살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언어의 다양성을 말살한 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만 쓰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목축업을 하면서 고기를 더 효율적으로 얻기 위해 개량 과정에서 다양성은 없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형질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교배시킨다.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형질 개량과 교배를 하게 되면 동물들은 유전적으로 거의 일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병에 동시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등 전염병 한 번 돌면 대량 살처분을 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윌리엄 헤밀턴 교수의 말이다. 최 교수가 정말 존경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순수를 혐오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진화하고 다양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는 획일성이다. 최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불과 1년 반만에 베타, 알파, 오미크론 등 다양한 변이가 나타났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타이밍에서 최 교수는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이 있다. 메밀꽃밭에서 꽃들이 활짝 펴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장관이다. 인간은 똑같은 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거에 엄청난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은행나무 같은 것들이 줄지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것을 봐도 감동을 느낀다. 나는 지저분한 열대우림이 좋다. 호모사피엔스는 균일성을 사랑하는 존재다. 호모사피엔스 사회의 다양성은 설명하기가 참 쉽지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관찰을 해보면 우리는 다양성을 죽이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산다. 하여간 조직 사회에는 다 회의, 회의, 회의다. 조직원들 중에 회의를 좋아하는 분은 내가 본적이 없다. 왜 그럴까?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면서 회의를 열어 놓고 어떤 사람이 삐딱한 이야기를 하면 째려보고 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다양성을 줄이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인간은 다양성을 혐오하는 동물 같다.

 

최 교수는 "인간은 다양성을 혐오하는 동물 같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윤동욱 기자>

 

원래 인류는 근대 이전까지 다양성을 말살시켜왔지만 근현대 이후로는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인류 사회에서 다양성은 논의할 주제가 아니었다. 왕정 시대에는 백성이 다양하면 통치하기 골치 아팠다. 백성들은 흔히 말하는 개돼지처럼 먹을 거나 던저주면서 통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은 그리 좋은 덕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사회로 넘어오면서 다양성은 논의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1964년도에 차별금지법(민권법)을 입법하면서 미국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차별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후 세계 많은 나라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할당제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여러 선진국들에서는 여전히 공조직에 한해 할당제를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와 한국도 마찬가지다.

 

캐나다는 의원의 50%를 여성으로 채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그 정도는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문재인 전 대통령도 (47석의 비례대표를 넘어 전체 300석 중) 여성 의원 비율을 30%로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었다.

 

말나온 김에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요즘 K가 붙어서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것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K-정치는 어떤가?

 

요즘 K가 붙으면 다 좋다. K-팝, K-문화 등등 말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 내가 과학상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았다. 그런데 K-정치는 전세계에서 바닥을 기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그래서 국립생태원장을 하는 3년 동안 관찰해봤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이 관찰이지 않은가? 동물 관찰보다 더 신기했다. 멀쩡한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싸울까? 점심시간에는 여야 의원, 기관장들이 다 멀쩡하다. 다들 서로 친하다. 이야기도 서로 잘 통한다. 그런데 2시 되면 또 싸운다. 내가 그래서 한 5년 전쯤에 국회 포럼을 가서 이런 제안을 했다. 시민관찰단을 조직해서 우리가 하라는 일들을 의원들이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시간 만큼 급여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5만원 이상 받는 분들이 많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제안을 했더니 다들 민망해했다.

 

최 교수는 토론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토론이 익숙치 않은 것이 한국 문화다.

 

왜 못 할까? 생각해 봤는데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서양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토론 교육을 한다. 사실상 말이 트이자마자 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내내 토론 교육을 받는다. 심지어 수학도 토론한다. 예전에 앵커 백지현씨의 끝장 토론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끝장 토론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나라 토론장의 모습을 한 번 보자. 기필코 상대를 이기겠다는 결연함이 돋보인다. 그러자고 토론을 하는 게 아니다. 

 

최 교수는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사진=윤동욱 기자>

 

상대와 토론을 하며 정반합의 진화된 결론으로 나아가면 좋은데 상대를 말살하기 위해 토론을 하는 것이 한국 정치판의 국룰이다. 최 교수는 20년 전부터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통섭이라고 하면 바로 최 교수가 떠오른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학문과 분야간 융합을 뜻하는데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 개념을 소개하는 책을 썼고 최 교수가 번역 출간해서 국내에 소개했다.

 

서양 사람들은 통섭을 종종 점핑 투게더라고 표현한다. 함께 솟구친다는 뜻이다.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함께 솟구쳐서 개념을 승화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학문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혼자서 모든 학문을 다 섭렵할 수도 없고 혼자 성공할 수도 없다.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협력하면서 올라갈 수 있다. 토론이 너무 많이 오염되었다. 나는 얼마 전에 <숙론>이라는 책을 썼다. 사전적 의미는 ‘깊게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숙론을 하게 되면 세상 좋은 일이 없을 것 같다. 개인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람들 아닌가?

Copyright ⓒ 평범한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