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요 시상식 후보로 한국 작품 전무…영화업계 "제작 환경 척박"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2020년 2월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개 상을 석권했을 때 한국에서는 제2, 제3의 기생충이 잇따라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었다.
봉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처럼 거장 반열에 오른 영화인들이 미국과 유럽 영화 시상식의 중심에 서면서 큰 물꼬를 튼 만큼, 그 후배 창작자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란 기대였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투자한 순수 한국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2022년 미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 등 6관왕을 휩쓸며 'K 콘텐츠'의 힘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인종적 다양성이 좀 더 존중되고 영어가 아닌 외국어 작품의 문턱이 전보다 낮아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상당 부분 스며든 한국계 창작자들의 영화 '미나리'와 '패스트 라이브즈',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잇달아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정이삭(미국명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는 2021년 한국 배우(윤여정)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겼고, '성난 사람들'(2023)의 한국계 미국인 감독 겸 작가 이성진과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이 드라마로 에미상 시상식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셀린 송이 연출하고 한국 배우 유태오 등이 출연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올해 2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는 전미비평가협회(NSFC) 작품상 등을 받으면서 지난해 할리우드 시상식 시즌 최고 화제작으로 관심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매체 비평가들이 꼽은 지난해 최고 영화 목록에 잇달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할리우드의 주요 시상식 일정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나 한국계 창작자들의 작품이 후보로 언급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9월 열린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도 한국 관련 작품의 수상은 하나도 없었다.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는 일본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고 제작에도 참여한 '쇼군'이 18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워 눈길을 끌었다.
올해 한국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 해외에서 크게 인정받는 작품이 나오지 못한 것은 그저 운이 나빠서일 수도 있고,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당장 이달 26일에는 세계적인 화제작인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돼 내년 할리우드의 주요 시상식에서 다시 후보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최근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 제작을 스트리밍 업체가 주도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환경에서 창작자나 제작자들이 처한 여건이 과거보다 척박해졌다는 푸념이 업계에서 들리는 것은 우려할 만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특히 관객들이 영화를 보려고 굳이 극장을 찾는 대신 집에서 TV로 스트리밍 플랫폼에 접속하는 시대가 되면서 전체적인 영화 제작 편수가 급감하는 등 한국의 영화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10여년 전 영화 분야를 담당하던 시절 알고 지내던 업계 관계자를 최근 다시 만났는데, 그 회사의 영화사업 관련 팀 여러 개가 완전히 없어져 해당 인력들이 아예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팀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연간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 편수가 몇 년 사이 크게 줄면서 더는 해당 인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드라마 제작업계 역시 스트리밍 업체들의 투자가 일부 대작에만 집중되고 방송사 등 기존 채널의 드라마 제작은 점차 사라져 전체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서 여러 제작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영어권도 아니고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작은 나라 한국에서 할리우드의 아카데미나 에미상,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을 받는 봉준호나 박찬욱, 황동혁 같은 감독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신인 시절부터 꿈을 키우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돼준 한국 영화산업의 저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진다면 봉준호나 황동혁 감독을 이을 한국 창작자들의 명맥은 끊길 수 있다.
국내 정치가 특히나 혼란스러운 시기이지만 최근의 노벨문학상까지,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서 드높인 분야가 '문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추후 우리 문화·콘텐츠 산업의 토대를 지키기 위한 정책 입안자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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