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4)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속 시 한 편을 공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한강은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여덟 살(1979년)에 쓴 이 시를 낡은 구두 상자 속 일기장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이날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나는 쓰는 사람”며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고 말했다. 또 자전적 소설 ‘흰’과 연결되는 작품을 준비 중이라면서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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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강은 미리 준비한 강연문을 한국어로 낭독했다. 약 30분 동안 진행한 강연에서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소설을 쓰며 삶에 대해 질문하고 통찰해온 시간을 회고했다.
한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소년이 온다’와 관련해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며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고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광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뒤 “정면으로 광주(5·18 민주화 운동)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면서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한달에 걸쳐 매일 9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따금 망월동 묘지에 다시 찾았다”고 회상했다.
한강은 이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며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이 두 질문이 오랫동안 자신에게 핵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회고했다.
한 작가는 글을 쓸 때 신체를 사용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을 사용한다”며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강은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이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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