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정부가 다음달부터 시행하는 항공안전법 42조 개정법의 시행을 최대 2년 유예하고, 그 기간 동안 항공종사자의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내실 있는 건강관리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민국 조종사노동조합 연맹(이하 조종사노조연맹)은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2층 세미나실에서 ‘항공종사자 건강관리와 제도 선진화를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고 내년 1월 바뀌는 항공안전법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이 자리는 더불어민주당 국토교통위 안태준‧손명수‧이연희 의원실이 공동주최하고 조종사노조연맹과 국토교통부 노동조합이 공동주관해 열렸으며, 장정순 항공우주의학협회장‧권보헌 극동대 교수 등 학계 교수와 국적사 조종사와 현장 관제사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장정희 조종사노조연맹 대외협력실장(제주항공 기장)은 “정부가 항공안전법 42조 개정을 통해 내년 1월 19일부터 항공종사자를 대상으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 보고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시 업무정지 등 행정처벌을 예고했다”며 “그러나 현행 제도와 비교했을 때 더 좋아졌다고 보지 않는다. 행정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보고, 허위보고가 나오거나 항공종사자 건강관리와 자격증명 유지가 위협받을 최악의 상황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항공선진국의 경우 자발적 보고제도 활성화와 동료지원 제도 등 안전 패러다임에 노력하는 반면, 한국은 선제적 예방보다는 사후 처방식 처벌주의”라며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 체결국 중 3그룹에서 2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항공안전법 42조 개정법에 따르면 운항승무원 및 항공교통관제사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의 저하가 있는 경우 그 사실을 국토교통부장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이는 행정상 협력의무에 해당한다. 또 신고의무의 주체는 운항승무원 및 항공교통관제사로서 불이행한 경우 자격증명의 효력이 정지되는 제재적 처분을 받게 된다.
신고절차는 항공종사자가 국토부장관에 신고하면, 국토부장관은 그 적합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그 기간동안 항공업무에 종사할 수 없고, 이를 위반시 자격증명의 효력이 정지되는 제재적 처분을 받는다.
항공종사자들은 이같은 개정법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조종사노조연맹에 따르면 “정부는 항공사(사업자)에 전문조직 내지 전문인력을 두어 건강상태를 상시 점검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나 관련 인력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며, 항공종사자는 항공의학적 전문성이 떨어져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판단하고 신고 의무를 이행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주장이다.
과하게 복잡한 절차 민감정보 수집 등 개인정보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연맹에 따르면 항공종사자 개인이 건강상태가 저하돼 의료인에 진단을 받아 항공신체검사증명의기준에 적합하다는 1차 판단을 받을 경우에도, 국토부에 이 사실을 신고해야 하고, 정부 위탁협회에도 또다시 적합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이에 대한 결과 통지시기까지는 업무에서 배제된다. 항공종사자가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민감정보(의료정보)’가 항공전문의사 소견과 상관없이 그대로 국가에 제출‧수집된다 점도 꺼려지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유인호 변호사(법학박사)는 이날 ‘개정된 건강상태 신고의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개정법상의 신고의무 조항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 관한 민감정보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과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주기적인 신체검사제도 등으로 이미 건강상태 저하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잉금지원칙 측면에서 신고의무와 행정제재 방식보다 완화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선 ‘항공교통관제사’에 대한 건강관리 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점검도 있었다. 이장욱 국토교통부노동조합 항공특별위원장(관제사)는 “2019년 당시 ICAO 산출공식 적정인원(552명) 대비 한국의 15개 관제시설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352명으로 63% 조금 넘는 실정”이라며 “이처럼 인력이 부족한 가운데, 항공종사자의 건강상태 신고의무 기한을 업무일 기준 7일 이내로 둬 인력운영이 더욱 어려워지며, 대체근무자 투입으로 이들의 피로관리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장욱 위원장은 개정 전 현 제도의 문제점도 짚었다. 그는 “관련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건강증진을 위한 운동기구, 체중계 등 비치 요청도 거절당하는 상황이며, 전문가 초빙 건강교육도 실시할 수 없다”며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 외에는 항공 종사자 현장에 건강증진을 위한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 배치도 전무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모인 항공종사자 및 관계자들은 “신고 누락에 대한 처벌 등 개정법을 1~2년 유예해야 하며, 제대로 된 고시와 홍보를 통해 확실히 제도를 안내해야 한다”며 “유예기간 동안 항공업계 전반의 의견을 수렴해 더 선진화된 규정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항공종사자에게 신고 의무 등 책임만 강요하기보다는, 인력충원 및 실질적인 지원책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한 목소리를 냈다.
오한영 국토부 항공자격팀 팀장은 이에 대해 “이번 개정법에 대해 발생하는 문제점은 운영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항공 종사자가 최대한 업무에 불편함이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시행규칙도 더 구체적으로 세우겠다. 정부와 항공종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견을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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