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사태 후 정국이 후폭풍에 휩싸이면서 윤석열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정책 동력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오는 10일 본회의에서 예산안 처리가 예정돼있지만 윤 대통령 탄핵 표결이 7일로 예정됨에 따라, 예산안과 관련한 여야의 협상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대표가 6일 오전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탄핵 정국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만약 여당에서 8명의 의원이 찬성하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은 가결되고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그간 추진해오던 주요 경제 정책과 사업은 후순위로 밀려난 모양새다.
그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체코 원전 수출 및 의료‧연금 개혁도 자칫 동력을 잃고 표류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첫 시추 앞둔 ‘대왕고래’…예산 삭감‧탄핵정국에 ‘당혹’
현재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관련해 시추선 웨스트카펠라호가 오는 10일쯤 부산항에 도착해 보급품을 실은 뒤 경북 동해안 시추 예정지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시추 작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앞서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석유공사가 1차 시추작업을 앞두고 포항 영일만항을 최근 보조항만으로 선정하면서 포항지역에서도 나름 기대감이 고조됐지만 민주당이 국회 예결위에서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설상가상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까지 발의된 상황에서 예산안 협상을 통한 자금 확보는 더욱 묘연해진 상황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석유공사와 산업부가 예산의 절반씩을 각각 부담한다. 이미 해외 선사 등과 계약이 모두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은 석유공사 부담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추가 재원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윤 정부의 대표적인 대형국책사업 중 하나로 꼽혀온 만큼 비상계엄으로 틀어진 국회와의 관계가 향후 프로젝트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수차례 시추 작업이 예정돼 있어 예산 마련이 계속 삐걱댈 경우 프로젝트 추진동력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음 달 시작되는 1차 시추 탐사 작업에 이어 2차 시추 작업은 2026년쯤에 이뤄질 예정으로 차기 정권이 해당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지도 미지수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오는 10일까지 추가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 설득 작업에 나서는 중이었지만 갑작스런 정국 변화에 어떻게 해야할 지 무척 당혹스럽다"며 "우선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약 2년 주기로 총 5번의 시추 탐사 작업이 예정돼 있다. 각 작업 당 최소 1천 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친원전’ 정책으로 훈풍 분 원전업계…불확실성 떠안나
윤석열 정부가 강력히 추진했던 원전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오랜 시간 사장됐던 원전업계는 현 정부 들어 '친원전'으로 기조가 바뀌면서 부흥기를 맞았지만, 정국이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면서 큰 불확실성을 떠안게 됐다는 평이다.
임기 내 윤 정부는 국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가동 원전들은 계속운전 절차를 추진했었다.
이와 함께 총 2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원전 세일즈'에도 박차를 가했다. 오는 2030년까지 원전을 총 10기 수출하겠다는 청사진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체코 원전 수출에 대해 민주당은 "밑지는 장사"라고 비판하면서 금융지원 등을 문제 삼았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 의결한 가운데 여기에 원전 관련 예산을 대폭 감액했다.
특히 원전업계에서는 체코 원전을 둘러싼 우려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원전업계는 정권 교체로 인해 에너지 정책이 또 다시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현 정부의 대표적인 친원전 성과인 체코 원전 사업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현재 체코 원전 사업은 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한 '팀코리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내년 3월 중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
최종 계약이 무사히 성사될 경우 원전업계에 큰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안감이 드리워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더라도 체코 원전 사업의 최종 계약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정권이 교체될 경우 국내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전해졌다.
연금‧의료정책도 동력 상실 우려
연금·의료 등 해묵은 개혁 과제들을 맡은 복지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복지부는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지금이 연금과 의료개혁의 적기"라며 개혁 의지를 불태웠는데 동력이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도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정부여당이 시민 공론화 결과를 거부하고 발표한 개혁안이 논란이 큰 상황에서 탄핵 정국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앞서 연금액이 삭감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나이가 많을수록 보험료를 더 빨리 올리는 정부안은 사회적 갈등을 촉발했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이 늦어질수록 노후 보장 기능 상실과 기금 소진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관련 예산안 확보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10일까지 여야가 합의안을 마련해오라고 했으나 윤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예산안 증액과 관련해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더구나 조 장관은 계엄 사태 이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일 비급여·실손보험 개선안 논의를 위해 열릴 예정이었던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의개특위) 회의가 취소됐다. 의개특위 관계자는 “이날 회의에서 비급여·실손 공정보상 공청회 날짜를 정하려고 했지만 회의가 취소됐다”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보니 앞으로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의개특위는 이달 말 비급여·실손보험 개선 방안을 포함한 2차 실행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비상계엄 사태로 불투명해졌다.
한편 6일 정부는 그간의 정부 정책과 구조개혁은 흔들림 없이 이어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오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고 "최근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그간 정부가 추진해오던 산업경쟁력 강화, 외환·자본시장 선진화 등 중장기 구조개혁 정책들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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