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자 "美, 무기공급 지연 책임을 우리에 떠넘기려 해"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러시아의 침공으로 3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병력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징집 연령을 25세에서 18세로 낮추라는 미국 등 핵심 우방국들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5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징집 연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수적, 화력적 우세를 내세워 진격해 오는 러시아군을 막아내려면 징집 최저연령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압박해 왔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최전선 병력의 인원 측면에서 전선을 굳히기 위해선 (우크라이나가) 더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우리의 관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가 신병모집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실존적 중대 상황'에 직면했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처럼) 징집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걸 고려할 실질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징집과 관련한 사안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AFP는 지적했다.
전쟁 발발 초기에는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해 조국을 지키는데 앞장섰으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입대자가 감소했고 병역비리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입대를 꺼리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뇌물을 동원해 병역을 기피하거나 후방에서 복무하는 젊은이가 늘면서 소득 수준이 낮은 시골 출신의 40대 이상 중년 남성들만 최전선으로 끌려간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 8월 전국 24개 지역 병무청장을 전원 해임하고 각지의 모병사무소를 압수수색한데 이어 올해 4월에는 징집 연령을 27세 이상에서 25세 이상으로 낮췄지만 가시적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징집 연령 하향이 아니라 서방제 첨단무기를 더 많이 원조받는 방식으로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AFP의 취재에 응한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우리는 무기나 사정거리 부족을 사내들의 젊음으로 보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가) 무기 공급 지연으로 인한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떠넘기려 한다"고 비난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본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건 작년 미국 공화당 강경파가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법안 처리를 장기간 가로막은 탓에 탄약 등 물자가 떨어지면서부터였다.
우크라이나 의회의 올렉산드라 우스티노바 의원은 무기 원조 로비를 위해 만난 미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왜 젊은이들을 더 전선에 보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내부적으로 큰 반대가 있을 것이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 붕괴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대거 유출돼 징집 가능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조처는 병역기피를 심화하고 미래 세대가 통째 사라지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스티노바 의원은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징집 연령이 되지 않았는데도 자원해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서는 젊은이들도 일부 존재한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전했다.
올해 18살이라는 바딤 블라센코는 이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에 살해된 친구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작년 군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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