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로프, 우크라 전쟁 이후 첫 EU 방문…미국과 간접 충돌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다음 연설은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하겠습니다."
5일(현지시간) 몰타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장관회의 진행자가 이같이 소개하자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폴란드, 에스토니아 외무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떠났다. 이 같은 모습은 회의장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자리를 떠나기 전,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전쟁 범죄자"라고 지칭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생존권을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러시아 전범(라브로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는 성공할 것이고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AP 통신 등에 따르면 남유럽 섬나라 몰타에서 개막한 OSCE 장관회의에서 각국 대표단은 러시아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불만은 회의 시작 전부터 나왔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순환 의장국인 몰타가 유럽연합(EU) 제재 리스트에 오른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을 초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가 지난해 에스토니아의 OSCE 의장국 수임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라브로프 장관은 참석했지만 자하로바 대변인은 전날 비자 발급이 취소돼 참석이 무산됐다.
라브로프 장관은 EU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여행 금지 대상은 아니라고 AP 통신은 설명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EU 국가를 방문한 것은 2021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OSCE 장관회의가 마지막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OSCE 의장국이었던 폴란드는 라브로프 장관의 참석을 거부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서방이 냉전을 부활시키고 러시아와 직접적인 충돌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욕을 당한 뒤 새로운 공동의 적이 필요했다"며 "그 결과 냉전이 환생했고, 냉전이 뜨거운 단계로 확대될 위험이 훨씬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연설을 마친 뒤 바로 회의장을 나갔다.
라브로프 장관이 회장을 떠난 뒤 연설에 나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확전의 책임을 러시아에 돌렸다.
그는 "확전에 관해 얘기해보자"며 북한군의 유럽 배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공격,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추려는 러시아의 움직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 공격 등을 열거했다.
또 "라브로프 장관은 모든 회원국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에 관해 얘기했다"며 "그것은 바로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이 미래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이며, 러시아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OSCE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북미 등 57개국이 가입한 정부 간 협력기구로 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보호, 무기 통제 및 전쟁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한다.
러시아는 OSCE의 창설 멤버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OSCE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OSCE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비슷한 성격으로 변질됐다고 러시아는 주장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OSCE에서 배제하자는 입장이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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