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치 위기는 일반적인 정치 위기보다 더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격동을 겪을 때는 그 격동이 진정될 전망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현재 파리 상황은 다르다. 오히려, 국민의회(하원)의 정부 불신임안 가결로 물러나게 된 미셸 바르니에의 몰락은 프랑스가 향할 미래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예의와 양보로 유명한 중도우파 온건파인 바르니에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위기의 근본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7월 이후 프랑스 의회가 거의 비등한 3세력으로 나뉘었고, 어느 세력도 다른 쪽과 협력할 의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야당의 두 세력은 언제든지 정부 여당 세력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야당 일각에서 반란에 가까운 분위기가 조성됐고, 국가 부채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이념을 우선해 더 관대한 지출 공약을 실행해야 한다는 압력이 가해진다. 평화로운 중도 정치를 되찾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많은 이들은 현 상황을 프랑스 제5공화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정권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프랑스 제5공화국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샤를 드골의 손에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드골 이후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은 그 위상에 가까워지려 노력했지만, 대체로 실패했다.
마크롱은 샤를 드골과의 비교를 즐겼다.
하지만, 드골은 1962년 비슷한 정부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다가갔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의 대대적 지지를 받았다.
마크롱은 그 반대였다. 지난 7월 선거에서 정치적 입지를 시험받았고, 시험에 실패했다. 마크롱의 손을 떠난 권력은 의회를 설득할 다음 총리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의회의 존재감이 더 부각되는 동안, 의회의 무능력도 더 드러났다.
여러 비평가가 지적하듯, 군주제적 본능과 ‘톱다운식’ 권력이 기저에 있는 프랑스에서는 절충과 양보의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난 6월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한 이후 유권자들이 선택한 새 의회의 3세력은 정부를 위해 건설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베테랑 저널리스트 에릭 브루넷은 4일 저녁 BFMTV 토론을 시청한 후 “방금 본 토론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프랑스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용주의는 없습니다. 이념만 있을 뿐이죠. 모든 논의는 가치와 극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담론은 현실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프랑스식 행태입니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가 수년간 경제 현실에서 눈을 돌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정당 성향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정부가 공공 지출 증액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에 굴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예산 삭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적자와 부채가 발생했고, 어떤 정부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친기업 성향 신문사 로피뇽(L'Opinion)의 니콜라스 베이토우에 따르면, 이는 일련의 위기의 시작이다. 또한, 직관에 반하기는 하지만, 그 국가가 진정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경제의 심연을 직시해야만 유권자, 정당, 국가가 앞길에 놓인 어려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토우는 누가 새 총리가 되더라도 바르니에와 같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며, 바르니에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새 정부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없습니다. 과반수 의석도 필요하지만 그것도 없죠. 국가 지출 삭감을 관철할 결단력도 필요한데, 그런 결단력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비난에 찬 결의안이 몇 번 더 나오고, 정부가 몇 번 더 무너진 다음에야 우리가 정신을 차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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