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의 눈물, 정우성의 소감

고현정의 눈물, 정우성의 소감

바자 2024-12-05 15:38:05 신고

3줄요약
고현정의 눈물에서 본 것
사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사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사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사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지난주 11월 27일, 유퀴즈에 배우 고현정이 출현했다. 15년 만의 예능 출연이라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놀라웠다. 그의 진성 팬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브라운관에서 그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특유의 솔직함으로 상상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인지 출연 직후 그의 발언과 몇 장면은 꽤 오랜 시간 화제에 올랐다. 루머로 인한 마음 고생, 노화에 대한 걱정,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결국 그는 눈물을 터뜨렸고 울먹이며 말했다. "배은망덕하고 싶지 않고 잘하고 싶다. 조금 도와달라. 너무 모질게 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중략) 너무 오해 많이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며 고백하는 지금의 고현정이 있기까지 수없이 많은 오해 앞에서 슬프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 또 용기를 냈을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카메라 뒤의 71년생 인간 고현정이 보여서인지 괜히 울컥했다. 미스코리아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스타 대열에 오르자마자 재벌가와의 결혼과 이혼으로 긴 공백기를 가지고는 2005년 다시 드라마 〈봄날〉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강한 인상과 말투로 갑질 논란에 휘말리고, 타 배우와의 열애설과 루머가 돌면며 자주 그를 볼 수 없었다. 그 뒤로 지나치게 언행을 조심하거나 과하게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였다. 공인이라서 유독 가해지는 날선 평가와 ‘카더라’가 지나치다고 자주 생각했다. 갑자기 그가 데뷔 35년만인 올해 5월, 개인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며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용기를 냈다’는 진심도 터놓았다. 그제서야 나도 고현정이라는 배우를 한 인간으로 다시 보게 되었고, 그를 내심 응원하게 되었다.

정우성의 소감이 남긴 씁쓸함
사진/ KBS 영상 캡처
사진/ KBS 영상 캡처
이틀 뒤 열린 청룡영화제에선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났다. 정우성이 시상식에 등장해 수상 소감 자리에서 복잡한 입장을 발표한 것. 지난 11월 24일에 모델 문가비가 출산했던 아이의 친부가 정우성이라는 사실이 디스패치 보도로 알려지며 ‘혼외자’ 논란이 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날이었다. 그 뒤로 나온 후속 보도가 솔직히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정우성의 일반인 애인과 교제 중이라는 것, 그 애인과는 또다른 일반인 여성과 촬영한 즉석 사진과 과거 그가 보낸 ‘플러팅’ 성격의 인스타그램 DM 등이 줄줄이 폭로되었다. 지금까지도 무성한 소문인지 진위는 파악되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최다관객상을 받은 그는 시상자로 무대에서 "제 사적인 일이 영화에 오점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모든 질책은 제가 받고 안고 가겠다.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용기있다고 응원했고, 일부 연예인은 그의 ‘낭독’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청룡영화제 공식 인스타그램은 #청룡의 진심, #정우성의 진심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영상을 게재했지만, 논란이 되자 게시물을 슬그머니 내렸다. 진위야 어떻든 굳이 수상식에서 사생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참고로 이날 시상식에서 고 김수미 배우에 대한 추모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위의 두 해프닝(?)을 연달아 목격한 지난주 내내 마음이 괴로웠고 혼란스러움에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두 장면이 자꾸만 동시에 떠올라 씁쓸했다. 단순 ‘논란’으로 공식 석상에 더는 나오지 못하는 여자 연예인들과 최근 들리는 남자 연예인의 컴백과 재기 소식이 뒤엉킨 채 떠올라서였다. 누군가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을 논란을 일으키고도 별일 없다는 듯 행동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한 마디 말이나 표정으로 트집 잡히는 일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성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차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남녀 연예인에 대한 서로 다른 이중잣대 논란은 과거부터 숱하게 지적되어 왔다. 남자 연예인은 음주나 교통사고 뺑소니, 심하면 마약 투여와 성매수로 고개를 숙이지만, 여자 연예인들, 특히 나이가 어린 20대 초반의 여자 아이돌은 칼국수를 몰랐다는 발언이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해명하고 누군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든 것을 사과한다. 고현정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쎈 캐릭터는 루머에 휩싸이거나 활동에 제약이 갈까 두려워한다. 혹은 김숙이나 송은이처럼 아예 스스로가 뛰놀 판을 짜버려야 한다. 여전히 타 남자 연예인과 사귄다는 이유로 써 내려간 어느 여자 아이돌의 사과문에서, 악의적 헤드라인이 난무한 연예 뉴스에서 우리는 여성에게 들이대는 이중 잣대와 그로 인해 내재화하고 학습한 자기검열을 목격한다. 우리는 왜 여자 연예인을 이토록 쉽게 미워하고, 유독 높은 기준으로 재단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연예계는 사회에 만연한 젠더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곳이자, 성 역할 고정관념과 판타지가 재현되는 곳”이라는 어떤 여성학자의 분석만이 이에 답을 해줄 뿐이다.

여자를 미워하지 않기로 함
정우성은 단죄하고 고현정은 잘 봐주자는 식의 말을 하고자한 건 절대 아니다. 이 논의는 예술가의 사생활과 예술을 떼어 놓고 봐야 하는가, 도덕적 기준으로 공인을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다른 쟁점이다. 여기서 다루기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 성차별과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미디어의 행태와 연예인을 바라보는 이중 잣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 물론 두 사안을 가지고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 혐오를 이야기하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니냐는 비판도 들을 각오는 되어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분명히 존재하는 성차별이 없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지점에서 2017년에 나온 책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이자 대중문화 평론가 최지은의 진단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한국 사회를 여성의 외모, 말투, 표정, 행동 모든 것을 세세하게 평가하고 좁은 틀에 맞지 않으면 바로 비난하는 곳으로 진단한다. 틀에 맞지 않는 특정 여성이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으면, 같은 여자로 묶여서 함께 욕을 먹지는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으로 종종 여성이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게 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미워하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기에 타인에게 관대해지고 호의적이게 구는 ‘연습’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미디어에서 완벽하지 않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은 뼈아프지만, 충분히 새겨들을 만하다. 더는 여자를 미워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애꿎은 눈치를 보거나 움츠러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본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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