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권 의원들이 계엄령 시도에 실패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4일 아침, 한국 사회는 불확실한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 3일 늦은 밤, 윤 대통령은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에 곧장 국회의원 190명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고, 그렇게 6시간 만에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며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내란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에 국회는 늦어도 7일까지는 탄핵안에 대해 표결해야 한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며 “더 이상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야당은 윤 대통령을 ‘내란죄’로도 고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더해 김용현 국방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계엄령 선포의 “주요 가담자”이기에 내란죄로 고발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연합뉴스에 따르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야당이 현재 추진 중인 탄핵안을 통과시키려면 현직 여당 소속 의원 108명 중 최소 8명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5일 이른 새벽 탄핵소추안이 제출된 국회 본회의에는 여당 의원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편 4일 서울의 학교, 은행, 관공서 등은 평소와 같이 운영됐으나, 시내 곳곳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를 가득 메우며 “윤석열을 체포하라”고 외쳤다.
한국 최대 노동 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대통령 퇴진 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4일) 김용현 국방장관은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국민들께 혼란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데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신원식 대통령안보실장 등 윤 장관의 수석 보좌관들도 줄줄이 사의를 표했다.
윤 대통령이 이들의 사표를 수리할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편 4일 새벽, 밤새 극적인 장면이 이어진 끝에 계엄 철회 소식이 들려왔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후 수백 명 규모의 병력이 국회의사당으로 몰려왔으며, 상공에는 군용 헬기가 맴돌았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국회 담을 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찰의 저지를 피해 본회의장으로 들어온 의원 190명이 표결에 참여할 수 있었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밖에는 시위대 수천 명도 몰렸다. 한 여성이 군인의 총을 움켜쥐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영상의 주인공인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 계엄군과 대치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나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기존 입장을 뒤집고 계엄 해제를 선언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국회 밖 시위대는 환호했다.
대선에서 한국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이후 지지율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던 윤 대통령은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자 계엄령을 선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엄밀히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밤에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의 동맹국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먼저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 당국과 마크 루테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5일 계엄 해제 소식을 환영했다. 루테 사무총장은 계엄령 해제 발표는 법치에 대한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철통같다”고 발언했다.
한국의 탄핵 절차는?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면 72시간 이내 표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 재적의원 300명 중 3분의 2(200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해야 탄핵안은 가결될 수 있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이후 특별법원으로 재판관 총 9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에서 최대 180일간 심판하게 된다.
재판관 6명 이상이 탄핵을 결정하면 그 즉시 대통령은 파면되게 된다.
대통령 탄핵 선례는?
지난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뇌물수수,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탄핵을 당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돼 2달간 직무 정지를 당했으나,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심판 청구를 기각하며 다시 대통령 업무에 복귀했다.
만약 윤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당하면 정부는 60일 이내에 앞으로 5년 임기를 시작할 새 대통령을 뽑을 대선을 조직해야 한다.
한국의 계엄령 역사
한국에서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때는 1979년으로, 오랫동안 집권하던 군사 독재자 박정희가 쿠데타로 암살당한 직후다.
당시 장군이었던 전두환의 지도하에 군부 지도자들은 1980년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하며,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했다.
1981년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당국의 시위대 탄압으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계엄령이 선포되지 않았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계엄을 선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정치적 반대 목소리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올해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둔 이후 레임덕에 접어들며,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야당에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부인 김건희 씨와 대통령 본인과 관련한 잇따른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올해 그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인 17%를 기록했다.
추가 보도: 이웅비(서울), 프랜시스 마오 & 말로리 모엔치(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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