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4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애스펜 전략그룹(ASF) 행사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이번 사태는 과거 계엄령의 기억을 가진 한국에서 부정적 반향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매우 문제가 있고(deeply problematic), 위법적(illegitimate)”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캠벨 부장관은 “한국과의 동맹은 굳건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번 계엄 사태로 인해 “한국이 몇 달간 도전적인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고강도 메시지인 셈이다.
같은 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민주적 회복성과 법치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례”라고 말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정치적 갈등은 반드시 평화적이고 법치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백악관 또한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발표한 직후 “민주주의는 한미동맹의 근간”이라는 성명을 내며, 윤석열 정부가 민주적 원칙을 준수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윤 대통령이 민주적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대놓고 지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된 정치적 반대 세력을 겨냥했다. 국회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야권 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밤새 속전속결로 처리했고, 국회의장실은 계엄령 해제를 위한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계엄령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대규모로 국회 앞에 집결하며 윤석열 정부를 압박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한 지 몇 시간 만에 해제를 발표해야 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를 결정한 과정에서 전혀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으며, TV 방송을 통해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도 전 세계와 같은 방식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미국이 이번 사태에 강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의 민주주의 기반을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미국의 분노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뉴스1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와의 정보 공유가 부족했던 점이 미국 입장에선 불쾌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며 미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강경한 표현이 단순한 비판을 넘어 다른 국가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뉴스1에 “미국은 동맹국에 대해 단어 선택을 매우 신중히 한다”며 이번 사태가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민주주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강력한 표현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대한 국제적 반발과 국내 비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이터는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계엄령에 대해 여야가 모두 ‘문제적’이라고 동의한 점은 민주주의의 강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사의 표명과 혼란 속에서 한미 간 긴밀한 소통이 한동안 어려워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4~5일로 예정됐던 제4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연습을 연기하며 현 상황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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