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반도체 부문의 심각한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들어갔다.
위기 타개를 위해 농축된 노하우가 시급한 부문의 ‘올드맨’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주요 사업부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리더 후보군에 젊은 인재들을 대거 등용하며 부활을 위한 사전포석에 중점을 뒀다는 평가다.
전례 없는 특단의 대책을 놓고 기대의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핵심 사업부서의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어진데 따른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다만 성장잠재력을 갖춘 핵심 인재들과 이를 바탕으로 차기 신기술 분야에서 역량이 입증된 우수인력들을 전면에 배치한 만큼 작금의 위기 타개는 물론, ‘삼성’이라는 국내 1위 대기업의 위상 회복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인사 핵심 키워드, ‘쇄신’에 집중
삼성전자는 최근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부사장 35명, 상무 92명, 마스터(임원급 기술전문가) 10명 등 총 137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보다 상무 승진자는 77명에서 92명으로 늘었지만, 부사장 승진자는 51명에서 35명으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2024년 143명(부사장 51명), 2023년 187명(59명), 2022년 198명(68명), 2021년 214명(31명), 2020년 162명(14명) 등으로 승진자 규모가 계속 감소 추세다.
이번 인선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핵심 사업분야에서 차기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인재들을 부사장 직급으로 승진 배치했다는 점이다.
DS부문에서는 배승준 메모리사업부 D램설계3그룹장 부사장(48세), 유상민 시스템LSI사업부 RF개발팀장 부사장(51세), 이화성 제조&기술담당 파운드리 YE팀 PIE1그룹장 부사장(54세)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이들에게는 각각 메모리반도체, 시스템LSI, 파운드리 신규 공정 등 삼성전자가 직면한 반도체 기술 문제를 돌파하는 중책이 맡겨졌다. 배승준 부사장은 고속 D램 설계, 유상민 부사장은 RF 기술 경쟁력 강화, 이화성 부사장은 신규 공정 양산 최적화에 걸쳐 올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에 도전하게 된다.
세계최초 수직 채널 트랜지스터(VCT) 개발을 주도한 DS부문 임성수 CTO 반도체연구소 D램 TD1팀 부사장(46세)과 권오겸 제조&기술담당 8인치제조기술팀장 부사장(47세)도 반도체 분야의 미래 경영자 후보군으로 부상했다.
영상디스플레이(VD) 부문 노경래 VD사업부 영업전략그룹장 부사장(48세)이 승진했다. 프리미엄 제품군의 시장 확대와 신제품 실판매(셀아웃) 확대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가전사업에서는 홍주선 DA사업부 회로개발그룹장 부사장(53세)이 AI 가전 기능 고도화와 차세대 제품군의 센서 개발로 가능성을 검증받았다. 한국총괄에서는 장소연 마케팅팀 부팀장 부사장(53세)이 국내 AI가전 마케팅 효과와 갤럭시 브랜드 인식 제고 성과를 토대로 승진했다.
모바일경험(MX)사업부에서는 부민혁 어드밴스드디자인그룹장 부사장(51세)이 차별화된 스마트폰 선행 디자인 역량을 인정받았다.
좋은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그간의 실적 부진에 따른 임원진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절차도 이뤄졌다.
올해 전체 DS부문에서 100여명의 임원이 퇴임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승진 임원 수도 51명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HBM을 포함한 차세대 D램에서 불거진 성능 이슈와 파운드리 부문의 수율 저하 등 각종 위기 상황과 관련된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관건은 역시 반도체···파운드리 부활 묘수는?
지난 5월 반도체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전자 대표이사 △DS부문장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원장 등 총 4가지 직책을 동시에 맡게 됐다. 사실상 반도체 수장 한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 인력을 몰아주는 전례 없는 방식의 인사라는 반응이다.
삼성이 특정 단위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두는 건 사상 초유의 사례로, 전 부회장 중심의 체재 개편을 통해 메모리사업 회복의 추진 동력을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전 부회장 주도의 위기극복 추진 과정에서 이뤄질 고강도 쇄신이 이번 인사 기조에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10월 전 부회장은 3분기 잠정 경영실적을 발표한 직후 성명을 내고 경쟁력 복원 의지를 드러냈다.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선임된 한진만 사장은 선결 과제인 고객사 확대의 선봉에 설 전망이다.
한 사장은 삼성반도체미주총괄(DSA)을 역임하며 AI 반도체 시장의 최전선인 미국에서 사업을 지휘해왔으며, 파운드리사업부에서도 당시 경험과 노하우를 녹여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에 대한 내·외부 평가의 공통사항으로는 D램 설계팀과 SSD 개발실장을 거쳐 전문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풍부한 글로벌 고객 대응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그중에서도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글로벌 빅테크를 상대로 한 수주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사업부에 신설된 사장급 CTO(최고기술책임자)에는 남석우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 사장이 선임됐다. 공정개발 전문가로 알려진 남 사장은 3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의 수율을 높이고 성능을 개선을 위한 전략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신임 경영지원실장·최고재무책임자(CFO)에는 박순철 부사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사장이 사업지원TF로 합류하면서 삼성 내외부에서는 어떤 인물이 CFO에 오를지 주목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실적 부진 등 대내외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고, 내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라 불확실성도 지속되는 만큼 어느 때보다 CFO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66년생인 박 부사장은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출신이다. 네트워크 사업부, 모바일경험(MX) 사업부와 사업지원TF를 두루 거쳤다. 이번 승진으로 삼성전자 DX부문의 투자 등 재무 전략 업무를 총책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Young)삼성맨’들이 온다
삼성전자는 성과가 검증된 주요 30·40 젊은 인재를 발탁하며 세대교체를 위한 미래 리더 후보군 육성 기조를 이어갔다.
반도체 사업 경쟁력 보강을 위해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서 51명, 디바이스경험(DX)부문에서 총 86명 승진자를 임명했다. 특히 인공지능(AI), 6G 통신, 차세대 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에서 다수 인재를 임원으로 선발했다.
최연소 승진자는 DX부문 CTO SR 통신S/W연구팀 하지훈 상무(39)다. 소프트웨어 핵심기술 개발·상용화를 주도한 차세대 통신 소프트웨어 플랫폼 설계 분야 전문가다. 가상무선액세스네트워크(vRAN) 기술 차별화를 이끈 성과를 인정받았다.
채교석 메모리사업부 D램 PA3그룹 상무(46세)는 업계 최선단 D1b 제품과 D1b 32Gb DDR5 제품 개발을 이끈 성과로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박일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1그룹 상무(48세) 또한 고용량 QLC V낸드 제품 사업 확대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김우일 시스템LSI사업부 AI SOC-P/J 상무(46세)는 모바일·자동차·AI SOC 시스템 IP를 최적화해 성능 향상과 안정성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활가전 사업에서는 AI 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고 제품간 연결성 고도화를 이끈 이문근 DA사업부 서비스SW그룹장 상무(48세)가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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