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국방부장관 나이 프로필 키 몇cm 비상계엄 주역 충암고 4인방 누구 충격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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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국방부장관 나이 프로필 키 몇cm 비상계엄 주역 충암고 4인방 누구 충격 총정리

더데이즈 2024-12-05 01:34: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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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대한민국 정국은 전격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혼란으로 요동쳤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등학교 1년 선배이자 군사 전략 전문가이다.

 

 

최근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논란의 중심에 서며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육군 수도방위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 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예비역 중장이다. 

 

현역 시절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인정받아 중장 1차 진급에 성공했으나, 대장 진급에 실패해 2017년 전역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경호처장을 거쳐 2024년 제50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김 장관은 최근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인물로 지목되며,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방부는 즉시 김용현 장관 주재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비상경계 및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정치활동 및 언론·출판의 자유가 제한되는 포고령이 발표되면서 시민 사회와 정치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김 장관은 계엄 선포를 직접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며, 이 사안의 핵심적 인물로 지목됐다. 

 

국방부는 김 장관의 역할에 대해 “계엄은 헌법상 명시된 비상조치로, 국가 안보 상황에 따라 필수적으로 검토된 사안”이라고 해명했으나,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비상계엄은 국회의 해제 요구로 단 6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중과부적이었다.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비상계엄 사태는 김 장관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전체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며, 그가 윤 대통령과 공모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권력 찬탈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장관은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소추안 대상이 된 국방부 장관으로 기록됐다.  

 

김 장관은 사의 표명 입장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군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로 즉각 무산되면서, 그의 판단과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용현의 군사적 경력과 정치적 배경>

이와함께 김용현의 고향과 나이 프로필 키가 몇cm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59년 경남 마산 출신인 김 장관은 충암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1982년 소위로 임관한 뒤 수도방위사령관과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 요직을 거치며 군사 전략가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 대북 군사 대응 전략 수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 초기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며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중앙건설 사외이사, 숭실대 초빙교수 등 민간 영역에서 활동하다가, 2021년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 합류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경호처장에 임명된 김 장관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평가받으며, 2024년 9월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이번 계엄 논란으로 정치적 신뢰와 군사적 명성을 모두 흔들리게 됐다.  

 

 

<충암고 동문 논란과 계엄령 대비 의혹>

김 장관과 윤 대통령은 충암고 동문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야당은 김 장관의 국방부 장관 임명이 계엄 대비를 위한 친정체제 구축의 일환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 산하 주요 인사에도 육군사관학교 38기 동기들이 대거 배치된 점을 들어, 특정 인맥 중심의 인사라는 논란도 제기됐다.  

 

특히 민주당은 김 장관이 계엄 선포 전 대통령경호처 공관에서 주요 군 지휘관들과 비밀 회동을 가진 점을 문제 삼으며, 내란 음모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에 김 장관은 “해당 회동은 국가 안보를 위한 논의였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김 장관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국방부의 안정을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군의 대비 태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으나, 내부 혼란은 불가피하다.  

 

김 장관은 비상계엄과 관련된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으나, 그의 군사적 역량과 정치적 역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 사회는 김 장관의 사퇴 이후 국방부의 변화와 정부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 

 

<육사 4인방의 핵심적 역할과 정치적 파장>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를 실행에 옮긴 주요 군 인사들로 인해 큰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육사 4인방’으로 불리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비상계엄의 준비와 실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의 기획자이자 핵심 인물로 지목된다. 

 

군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으며, 철저한 보안 속에서 계엄 준비를 주도했다. 

 

계엄령 발표와 실행은 대통령실 내 다수 참모와 고위 당국자들에게조차 사전에 공유되지 않은 채 긴급하게 진행.

 

이 과정에서 김 장관이 실질적인 계획과 실행을 이끌었다고 알려졌다.  

 

김 장관은 계엄사령관으로 육사 8기수 후배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46기)을 추천했으며, 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박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김 장관의 이러한 추천은 현역 군 서열 1위이자 계엄 업무를 관장하는 합동참모본부의 김명수 의장이 아닌 박 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낙점된 배경으로 꼽힌다. 

 

김 의장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계엄사령관에 육군 인사가 임명된 것은 관례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의 병력을 동원하고 실행에 옮긴 이들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47기)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48기)이다. 

 

두 사령관은 특수부대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병력을 동원해 계엄군 작전을 주도했다. 

 

병력은 특전사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방사 소속 군사경찰특임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포고령 발표 후 약 30분 만에 국회로 진입했다.  

 

곽 사령관과 이 사령관은 김 장관의 육사 후배들로, 올해 초 논란이 됐던 김 장관의 공관 모임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 한남동 대통령경호처 공관에서 열린 이 모임은 야당에 의해 “계엄령 준비를 위한 불법적 모임”으로 규정되었지만, 김 장관은 이를 정치적 선동이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충암고 네트워크와 계엄 사태의 정치적 의혹>

김용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등학교 1년 선배로, 충암고 출신 군 인사들로 구성된 ‘충암파’의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이번 사태에서 주요 역할을 맡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또한 충암고 동문이다. 

 

이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면서 충암고 동문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정치적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충암고와 육사 출신 인사들이 계엄 사령부의 주요 직책을 장악하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는 윤 대통령이 계엄 준비를 위해 충성스러운 인사들로 군 지휘 체계를 채웠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김 장관은 “현실적으로 계엄은 불가능하다”며 이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3개월 만에 계엄을 건의한 것은 그 자신의 발언을 뒤집은 셈이 되었다.  

 

계엄 선포 후 박안수 계엄사령관은 정치활동 금지 및 언론 검열 등을 골자로 하는 계엄사 1호 포고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는 즉각 계엄 해제를 요구했고, 헌법에 따라 재적 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령이 6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김 장관은 계엄 해제 이후에도 청사에 남아 후속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출입기자들에게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계엄과 관련된 책임을 인정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국회와 시민 사회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며, 그가 내란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번 사태는 군 내부에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 

 

국방부는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하라는 지침을 하달하며 골프 및 음주 회식을 자제하도록 명령했다. 

 

당초 예정되었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관련 자료 배포 일정도 연기되었고, 김명수 합참의장은 긴급 지휘관 회의를 열어 군의 안정적 운영을 주문했다.  

 

군 내부에서는 충암고와 육사 네트워크 중심의 인사 구조와 계엄 실행 과정에서의 비밀주의가 조직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계엄군을 동원한 군 지휘부가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계획을 따랐다는 점에서 사전 모의 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단순한 군사적 조치 이상의 정치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김용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충암고와 육사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군 지휘 체계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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