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후, 한국은 자주국방에 전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박 대통령은 김재관을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으로 발령을 내고 미사일 개발을 극비리에 지시했다. 김재관은 번개사업과 율곡사업을 추진했고, 번개사업에서 개발된 것이 미사일이다. 미사일 개발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라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성도그룹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국방과학연구소에 근무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73년 초에 김재관은 상공부 중공업 차관보로 발령이 났다. 상공부 차관보로 임명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재관은 자동차공업 육성 시책을 추진했다. 자동차 산업은 김재관이 KIST 시절부터 준비했던 산업이었다. 자동차는 연관 산업과 고용 효과가 큰 산업으로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되는 핵심 산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포드와 손잡은 현대자동차, 피아트와 기술 제휴한 아세아 자동차가 있었다. 하지만 주요 부품인 엔진, 트랜스미션, 액셀레이터 등을 모두 해외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상공부 차관보가 되어 정책을 추진할 위치에 있었던 김재관은 자동차 산업 진흥계획을 다시 밀어붙였다. 그는 3년 전에 만들어 두었던 기획안을 다시 꺼냈다. 국산 모델을 개발해 국내 수요는 물론 해외로 수출한다는 전략을 이미 세우고 있었다.
김재관 차관보가 자동차진흥계획을 꺼내 들자 오동록 청와대 경제2 수석이 자동차 산업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김재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각하, 자동차공업을 육성하는 것은 대한민국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용 효과까지 생각하면 반드시 추진해야 합니다. 자동차와 연관된 수백 개의 협력 업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고민 끝에 김재관의 손을 들어주었다. 1973년 6월 김재관이 마련한 ’자동차공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김재관과 오동록은 멀어졌다.
이제 한국 브랜드 자동차를 생산할 업체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수요가 3만대도 안 되는 시점에 한국 브랜드로 고유 모델을 생산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독일과 일본에서 부품을 사다가 조립해서 판매하던 GM코리아, 기아산업이 상공부의 제의를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현대자동차였다.
김재관은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불렀다. 김재관은 정세영과 8층 창가로 가서 밖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 사장, 거리에서 달리고 있는 저 차들을 보시오. 대부분이 일본산 차입니다. 거리를 메우고 있는 저 일본산 자동차를 몽땅 국산 차로 바꿔야 하지 않겠소?”
정세영은 회사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현대차 간부들 모두가 반대했다. 현대자동차는 유럽 포드로부터 코티나, 그라나다와 같은 유럽 모델을 들여와 조립 생산해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정세영은 형 정주영과 상의했다. 정주영은 조선소를 만드는 것도 지금 벅찬데 자동차까지 과연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정부에서 상당한 지원을 한다면 모를까 이 상황에서 자동차까지 손을 덴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권하는 사업을 무턱대고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다음날 정주영, 정세영 형제는 자동차 진흥사업의 설계자인 김재관 차관보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려고 정부종합청사를 찾아갔다. 김재관이 말문을 먼저 열었다.
”정주영 회장님이 조선 사업을 시작했으니, 정 사장은 우리 자동차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워낙 관심을 보이는 사업이기도 하고… 저는 자동차 산업이 가지는 파생 효과가 굉장히 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의 고유 모델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주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차관보님,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대자동차는 기술 제휴를 하던 포드사와 함께 합작사를 설립하려 했으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에 실패하자 단독으로 고유 모델을 만들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탄생한 자동차가 바로 국민차‘포니’(PON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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