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5% 미만의 가입자가 전체 보험금의 60% 이상을 타가는 등 실손보험금 누수가 심각한 상황이다. 주요 원인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 부실로, 이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량한 가입자의 피해를 유발한다.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지만, 이해관계 등 고려할 부분이 많은 만큼 실효성에 대해서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주요 4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해보험) 가입자의 65.1%는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금을 단 한 건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소액인 ‘100만원 이하 청구’(30.5%)까지 포함할 경우 상반기 실손보험 보험금을 아예 청구하지 않았거나 소액을 청구한 비중은 95.6%에 달한다.
그러나 높은 미청구자 비율에 비해 실손보험의 적자는 심각한 상태다. 최근 발간된 보험연구원의 ‘4세대 실손의료보험의 비급여 진료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율은 118%, 적자 규모는 약 2조원으로 집계됐다.
또 올해 1분기 3세대 실손보험과 4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각각 156.3%, 134.5%를 기록하기도 했다.
적자의 주된 원인은 전체 실손보험 보장 진료비의 61%를 차지하는 ‘비급여 진료’의 남용으로 분석됐다. 소수 가입자의 이른바 ‘의료쇼핑’ 등 도덕적 해이가 과잉진료와 보험 재정 악화를 불러일으킨다는 해석이다.
그중에서도 물리치료(도수치료·체외충격파치료·증식치료 등)와 비급여 주사제 등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서의 실손보험금 증가가 눈에 띈다. 잘 알려진 백내장 시술부터 최근에는 하이푸 시술, 맘모톰 시술, 하지정맥류비밸브 재건술, 전립선결찰술, 척추 관련 수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문제는 비급여가 건강보험이 관리하는 급여와는 달리 별도의 관리 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의료기관이 가격을 임의로 설정하고 진료 횟수와 양을 남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해당 시술들이 ‘의료쇼핑’으로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질병이나 상해로 인한 손실을 종합보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실손보험인데 최근 청구 사례를 보면 일부 의사나 가입자가 개입해 손실 정도나 확률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손보험 있냐’ 물으며 돈 되는 치료부터 권하는 일부 병원 관계자들로 인해 비타민주사나 도수치료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진료에 의료비가 낭비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낮은 자기부담금으로 고가 치료를 무료 수준으로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일부 가입자와 의사에게는 이익일지 몰라도 미청구 고객들의 의료비와 보험료도 함께 올라가기에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보험사의 적자는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보험료 상승 체감도도 높은 편이다.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 40세 남성 A씨의 경우 2013년 월 보험료는 1만원 초반대였지만 3년마다 3차례 갱신을 반복하며 2022년 기준 보험료는 3만원 중반대를 넘겼다. 연 5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한 셈이다.
이에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이달 중으로 실손보험에 대한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통령실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는 연간 건강보험 적용 횟수 제한과 비급여 관리 강화 방안을 포함한 ‘실손보험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이번 방안은 5번째 실손보험 제도 개선 작업이다. 이를 통해 실손보험 과잉 청구와 비급여 항목 남용을 줄여 보험 재정악화를 막고 보험료 상승을 억제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급여 진료 증가로 인한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로 보험료 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과잉의료 유인 억제와 손해율 관리 방안 등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다. 이번에 효율적인 개정안이 도입된다면 지급 보험금도 함께 감소해 보험료 상승 확률도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실손보험 악용의 고리가 오랫동안 고착된 데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가벼운 개선 방안으로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은 의료비 부담을 키워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에 개선한다는 그 방향성 자체에는 매우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실손보험 개편은 이미 여러 차례 이뤄졌지만 실효성을 얻지는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의정갈등 이슈도 있고 의료서비스 공급자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이를 단기간에 풀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워낙 견고한 시장이라 적당한 타협안으로는 근절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고비용 의료구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기부담금과 진료비 심사 강화 등 효율적인 비급여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비급여 항목들이 통제되지 않는 이유는 대개 의료기관이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기관이기 때문이다. 주로 낮은 건강보험 수가 극복의 수단으로 정부 통제가 느슨한 비급여를 확대해 온 것이 주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며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주저했을 고가 치료들을 병원 권유로 이용하게 되면서 고비용 의료 구조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된다”고 짚었다.
이어 “비급여 이용 증가는 보험사 재정악화를 넘어 함께 묶이는 건강보험 급여 이용량도 증가시킴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공공의료기관 비중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만큼, 필수가 아닌 의료분야에서의 자기 부담금과 진료비 심사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한편 지난 10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혁 추진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비급여와 실손보험이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실손보험의 의미 있는 개혁이 이뤄지려면 비급여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며 “복지부와 협의해 실손 제도 개선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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