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권선형 기자] 올해 3분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 4사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자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개편과 체질개선 등 변신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업체 4사는 3분기 정유 부문에서 총 1조953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3조9464억원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137% 감소한 수치다. 기업별로 적자 규모를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업부문에서 6166억원, 에쓰오일은 5737억원, GS칼텍스는 5002억원, HD현대오일뱅크는 268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복합 정제마진의 급격한 하락이 정유부문의 수익성 악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정제마진은 판매하는 정유 제품 가격과 원유 수입 가격의 차이를 반영하는데, 3분기 동안 싱가포르의 복합 정제마진은 평균 3.6달러에 그쳐 손익분기점인 5달러를 밑돌았다. 이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의 석유 수요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전세계에서 석유 수요가 둔화돼 원유 정제 시설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것도 한몫 했다.
이에 업계는 구조적인 업황 침체 흐름에 따라 ‘비(非) 정유사업으로의 사업 다각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4분기에는 정제마진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훈풍으로 수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세계적 화석연료 퇴출 트렌드에 맞게 변신해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미 정유 4사는 신사업을 적극 전개하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SK E&S 합병하며 새 기업으로 거듭났다.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에 기존 SK E&S가 민간 최초로 통합∙완성한 LNG 밸류체인까지 더해지며 석유, 가스, 전력 등 주요 에너지 사업 전반에 걸쳐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또한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 설루션 등 미래 친환경 에너지 시장에서 주도권을 이어갈 기반도 확보했다. 나아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연구개발(R&D) 역량으로 SMR(소형모듈원자로),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의 사업을 지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에쓰오일(S-OIL)은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인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에 집중하고 있다. 총 투자금만 9조2580억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다. 에쓰오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유에서 석유화학 분야로 확장해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로의 변신을 하기 위한 시도다. 나프타와 같은 원료를 고온에서 열분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의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면 에쓰오일은 연간 18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고부가가치의 폴리머 제품을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에쓰오일은 정유 사업의 매출 비중을 줄이고 석유화학 사업의 매출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샤힌 프로젝트의 설계·구매·건설(EPC) 공정률은 약 40%에 도달한 상태로 2026년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GS칼텍스도 체질 개선이 한창이다. 변하는 에너지 시장과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저탄소 신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이다. GS칼텍스는 수소, 탄소 포집 및 저장(CCUS), 바이오 연료,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 다양한 저탄소 신사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바이오 항공유, 바이오 선박유의 실증 사업을 시작한 것이 눈길을 끈다. GS칼텍스는 작년 9월 대한항공과 협업해 국내 최초로 바이오 항공유의 시범 운항을 시작했다. 바이오항공유는 식물성 기름이나 폐식용유와 같은 재생 원료를 사용해 제조돼 일반 항공유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도 다양한 신사업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집중하고 있는 신사업은 수소 에너지,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 차세대 합성 연료, 바이오 선박유과 열분해유 등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이 기술들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비용을 크게 늘렸다. 2021년 95억원에서 2023년에는 214억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누적 친환경 특허 수는 2021년 2건에서 2023년 26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HD현대오일뱅크는 2022년 포스코와 공동으로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만든 제품에 대해 국내 정유사 최초로 ISCC PLUS 인증을 받는 성과를 냈다.
다만 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바이오 항공유 전용 설비 지원이나, 시설 투자 세액 공제 등이다. 기업들은 바이오항공유 전용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6조원의 자금이 들어가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정유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세제 혜택이 늘어야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우선 바이오 항공유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전용 설비 투자금 공제율을 15%까지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고, 나아가 기업들이 체질개선을 잘 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지원이 있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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