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말, 어디서 멈춰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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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저런글] 말, 어디서 멈춰야 하나요?

연합뉴스 2024-12-03 05:55:00 신고

3줄요약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어릴 적 불조심 포스터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아들 즈음, 많이 듣고 보던 일종의 표어입니다. 화재를 경계하자는 뜻을 나타냅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과 환상의 듀오였던 기억입니다. 둘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며 불조심 의식을 일깨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표어로는 낙제점 아닐까 하는 혹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 언어유희의 세계로 들어가 근거를 대보겠습니다. 일단 꺼진 불은 다시 볼 필요가 없습니다. 불날 일이 없습니다. 애초 꺼진 불이라고 한 게 잘못입니다. 꺼진 듯 보이지만 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불이라고 해야 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랍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일 때 그래야 하는지 알려줘야 했습니다. '다시 보자'도 무책임합니다. 30분 간격으로 하루 열 번가량 보자는 식으로 말했어야 합니다. 시간대까지 넣어서 바로잡아보겠습니다. '꺼진 듯하지만 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불을 30분 간격으로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최소 하루 열번가량 되풀이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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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공] (서울=연합뉴스 DB 자료)

어떻습니까. 약간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할 말을 다 하니 후련한가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논리 놀이를 곁들인 언어유희에 불과한 말 바꾸기였지만, 세상에 말을 이렇게 해서야 어디 어지러워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말이냐, 막걸리냐! 그렇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맑습니다. [꺼진 듯하지만 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불을 30분 간격으로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최소 하루 열번가량 되풀이해서 보자]는 뿌옇습니다.

개그맨 원조 격인 고영수 씨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를 소재 삼은 언어유희로 - 이것을 빌려서 극단으로 밀고 가는 수법을 잠깐 쓴 것이 이번 글입니다 - 웃음을 선사합니다. 몸보다는 말로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지요. 유머의 영역은 유머의 영역일 뿐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꺼진 불도 다시 보자'를 되새김질해도 부족한 시기입니다. 주의, 또 주의해야 합니다. 덤으로 책 『문장의 일』의 한 구절도 되새기면 보약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포괄성, 즉 말로 가능한 모든 것을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까지 말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런 것이 목적이라면 문장은 끝이 나지 않을 테니까".(p.69)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스탠리 피시 지음 오수원 옮김, 문장의 일, 윌북, 2019 (제공처:교보문고, 전자책)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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