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소설'블러핑'52] 대한민국 철강산업을 일군 숨은 영웅, 김재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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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소설'블러핑'52] 대한민국 철강산업을 일군 숨은 영웅, 김재관 박사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4-12-03 05:30:00 신고

3줄요약

1973년

포항제철의 기적을 만든 숨은 영웅, 김재관 박사

 임영숙 회장의 외아들 이정열이 떡하니 부산의 명문인 경남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 임영숙은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고교 평준화가 되기 전의 마지막 시험이라 더욱 그랬다.

“월남전도 끝났고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자. 정열이가 희망을 주네. 기특한 놈.”

“부산에 내려가셔서 축하해 주셔야…”

“선거가 코 앞이니 끝나고 내려가자.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걸로 선물을 보내줘.”

청하는 부산에 내려가지 못해 속이 상했다. 정열이가 많이 기다릴 텐데…

제9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되었다.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추천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선출되었다. 이렇게 국회의원이 된 의원들이 만든 단체가 유신정우회이다.

유신정우회는 유신헌법으로 생겨난 독특한 정치단체로서, 절대 권력자였던 박종희의 정책을 국회에서 관철시키기 위한 원내 친위대였다. 결국 유신정우회의 73석을 더하여 민주공화당은 의원정수 219명 중 146석을 차지하였다.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김재관 박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 아래에 있는 강철 쇳물을 뽑아내는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점화로에 불을 지핀 지 21시간이 지난 오전 7시 반. 출선구가 열리고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용암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나라가 만든 최초의 일관 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착공 이래 3년 3개월간을 노심초사 기다려온 터라 사람들은 너나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풀 한 포기 없는 모래 벌판에서 시작한 지 5년 만에 이루어 낸 쾌거였다. 공사비 1,215억 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고, 단일 사업으로는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였다. 7월 3일에 치러진 준공식 이후 포항종합제철은 서울 여의도의 3배에 이르는 270만 평의 거대한 부지에 도로 길이만 80km가 넘는 '철의 성지'가 되었다.

포항제철의 기적을 만든 숨은 영웅, 김재관 박사는 대한민국 중공업 발전에 이바지한 자랑스러운 과학자이다. 정주영과 박태준은 널리 알려졌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서 한국의 철강, 조선, 자동차산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사람이 김재관 박사였다. 1967년 박종희 대통령에 의해 제1호 유치 과학자로 초청되어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중공업과 자동차산업 육성 방안을 기획한 설계자였다. 포스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의 그림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김재관은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부산으로 피난해 학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군 부대에서 통역을 했는데 그 부대는 미국에서 건너온 중화기 집결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박격포, 장갑차, 탱크 같은 중화기가 특수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때 특수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56년 9월 김재관은 독일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뮌헨 공과대학에서 금속재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독 굴지의 철강회사 데마크(DEMAG)에서 근무하며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 방안’ 보고서를 작성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1964년 12월 박종희 대통령은 관료들과 함께 독일을 방문했고 박 대통령은 뮌헨의 한 호텔에 독일 유학생들을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김재관은 그동안 만든 철강공업 육성 방안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건넬 수 있었다.

박종희 대통령은 보고서의 제목을 내려다보았다.

“각하! 철강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필수이고, 기반입니다. 자금이 많이 들어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사업입니다. 이건 제가 쓴 기획안입니다. 혹시라도 국가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대통령은 내심 놀랐다.

“정말 고맙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림 왼쪽이 박정희 대통령, 오른쪽이 김재관 박사, 삽화=윌리엄
그림 왼쪽이 박정희 대통령, 오른쪽이 김재관 박사, 삽화=윌리엄

 미국으로부터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대가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을 지원받자, 박 대통령은 KIST 초대 소장이 된 최형섭 박사에게 해외에서 연구하는 우리 과학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라고 지시를 하면서 독일의 김재관은 반드시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최형섭 박사는 김재관 박사를 포함하여 미국에서 초빙한 연구원 등 총 18명을 책임 연구원으로 채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김재관은 출국한 지 11년만에 제1호 유치과학자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의 직책은 최형섭 소장 다음의 제1연구부장이었다.

그는 독일 데마크에서의 경험과 일본 산업화 과정을 근거로 103만 톤의 조강 능력을 갖춘 제철소 건설을 기획했다. 이 사업에는 외자 1억 2,370만 달러와 내자 633억 원의 자금 소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금이 문제였다. 정부는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최첨단 방식의 고로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일본과의 기술 협상에 김재관이 나섰다. 일본 기술자들은 한국에 연속 주조가 되지 않은 소규모 독립 제강공장을 만들고, 이를 연결해 철강을 생산할 것을 권고했다. 이렇게 되면 철강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생산 단가가 올라간다.

김재관은 독일의 데마크(DEMAG) 철강 기획실에서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연속 주조를 고집했다. 일본인들도 자신들보다 해박한 지식으로 논리 정연하게 대응하는 김재관의 반박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주장대로 연속 주조가 가능한 일관제철소를 짓는데 협조하기로 했다.

김재관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LD전로 방식을 일본인에게 제안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발명한 것인데 이 방식을 채택하면 불순물 함유량을 줄여 양질의 철강을 얻을 수 있는데 일본제철소에서도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었다. 오히려 일본 기술자들이 김재관에게 배우는 처지가 되었다.

박 대통령은 김학렬 경제부총리에게 중공업 육성책을 맡겼고 김학렬은 중공업 기반의 산업화를 주장해 온 김재관 박사를 신뢰하여 중책을 맡겼다. 김재관을 주축으로 구성한 KIST팀은 주물선공장, 특수강공장, 중기계공장, 대형조선소를 4대 핵심공업으로 추진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4대 핵심공업은 군수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주물선공장은 대포를 만드는 공정이 되기도 하고, 특수강공장은 대포의 포신과 탱크와 관련이 있었고, 중기계공장은 탱크와 장갑차를 만들 수 있는 공정이었다. 대형 조선소는 화물선이나 상선을 만들지만 또한 군함 건조를 위한 시설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계획은 민수와 군수용을 겸해서 생산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구상한 것이다.

중공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이러한 원대한 계획을 실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재관은 밤을 새워 일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쪽잠으로 버텨내며 새벽까지 일했다.

박종희 대통령은 김재관 박사를 청와대로 불렀다.

“자주국방을 위해서 우리도 첨단 무기를 자체 생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겠소?”

“각하! 무기를 분해하면 부품 상태가 됩니다. 이 부품에 사용된 소재로 설계 도면대로 가공하면 생산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만든 부품을 조립하면 무기가 됩니다.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민수공장을 선정해서 부품별로 분담해서 정밀 가공 생산을 하게 한다면 당장이라도 무기 개발이 가능합니다.”

“오! 김 박사가 비밀리에 민수공장들을 찾아보시오.”

박 대통령은 김 박사와 상의 끝에,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1. 국산 무기로 병력을 무장시켜 군사력을 증진한다. 이를 위해 병기 개발에 즉시 착수한다.

2. 방위 산업은 민영회사 생산 체제로 한다.

3. 현대 무기 대량 생산에는 선진국 수준의 중공업이 절대적인 전제다. 우리나라 국방 산업 육성은 중공업화로 추진한다.

4. 기술자와 기능공의 양성과 확보가 무기 제조시설을 짓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박종희 대통령은 경제 제2수석비서관실을 새로 만들고, 오동록 상공부 차관보를 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다. 몇 개월간의 노력 끝에 국산 카빈총, 수류탄, 박격포 시제품이 생산되었다.

박 대통령에게 김재관 박사는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각하! 창원의 기계 공업단지가 완성되면 각종 대구경 포에서 탱크, 장갑차까지 생산할 수 있고, 항공기용 제트 엔진과 군함에 쓸 대형 엔진까지 모두 생산이 가능합니다. 민수용으로는 선박 또는 자동차 부품, 기관차, 선박용 초대형 엔진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창원은 분지형으로 공장입지 확보가 쉬웠고, 무엇보다 국가 보안상 천혜의 요새 지역이었다. 방위 산업과 관련된 대규모 개발에는 한국중공업, 기아산업, 대우중공업, 럭키금성 등 총 84개 회사가 동참했다. 자신들을 산업군단이라 생각할 만큼 자긍심이 대단했다.

박 대통령은 정주영을 청와대로 불렀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니 조선은 우리에게는 아직 벅찬 것 같은데 과연 우리 힘으로 배를 만들 수 있겠소?”

“김재관 박사의 이야기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배를 건조하는 것은 물 위에 아파트를 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은 파안대소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은 현대의 정주영 회장으로 결정되었다.

[팩션소설'블러핑'5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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