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속도 조절에 나섰다. 당초 정부는 기초학력 부진 문제를 해소하는 교육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했으나 교육현장의 우려가 이어지자 내년 3월 수학·영어·정보 교과는 예정대로 도입하되, 일부 과목은 제외하거나 도입을 늦추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내년도 교과서는 검정이 끝났지만 AI교과서의 구독 예산도 확정되지 않은데다 국회가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리스크로 꼽히고 있다. 또한 현장 교사 연수 시간이 촉박하다는 비판도 제기돼 도입까지는 난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언급되는 연 6만원으로는 부족…국회상황도 우려”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는 검정 심사를 마친 AI교과서를 2일부터 학교 현장에 공개 할 예정이며 각 학교는 서책형 교과서처럼 학교운영위원회 절차를 거쳐 교과서를 선정한다.
2025학년도에는 초등 3·4학년과 중1·고1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처음 적용되는데 초·중·고 영어에선 46종 가운데 44종, 수학·정보는 100종 가운데 32종이 검정에 최종 합격했다.
이처럼 정부가 속도 조절을 결정한 건 도입 교과목을 조정해야 한다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 현장 의견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검정 심사는 끝났으나, 예산 부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I교과서의 구독료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구독료 전망이 각각 다르고 도입 교과가 늘어나면 재정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내년에만 4067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2028년 예상되는 구독료는 1조 7343억 원이다.
구독료가 높게 책정되면 AI 교과서를 운영하는 각 시도교육청의 재정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구독료 책정이 너무 낮게 형성되면 AI 교과서 발행사들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이 부총리는 구독료와 관련해 “예상 비용은 보안·관리 비용까지 합쳐 수조 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며 “(2028년) 1조 미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공표했다. 이와 함께 특별교부금으로 교육청을 지원할 계획임을 전했다.
교육부가 AI 교과서 도입 계획을 조정하면서 재정 추계에도 변동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2026년에 도입하기로 한 국어·기술가정(실과) 과목이 제외되고, 사회·과학 과목이 1년 늦은 2027년에 도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과서 발행 업계에서는 현재 언급되는 6만 원도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 감지되고 있다.
단순히 교과서 투자 비용 뿐 아니라 클라우드 유지, 보안 등 운영비용을 고려해야 하므로 그보다 웃돌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교육당국이 개발 비용만 추산하고 운영비용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하며 인공지능은 기능을 개선해야 하는데 현재 언급되는 금액으로는 운영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최근 민주당이 최근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추진하는 것도 업체의 구독료 불안을 높이고 있다는 의견이다.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확정 된다면 교과서와 달리 각 학교장의 뜻대로 도입을 결정할 수 있어 업계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달 28일 AI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AI교과서 사용은 의무가 아니라 학교장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에 대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법 통과 시) AI교과서를 활용 못 하는 학교 학생들은 혜택에서 소외된다”라며 국회 설득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발행사 관계자는 안정적인 구독료를 위해선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가 먼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 정국에서는 앞으로 계속 AI 교과서를 사용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 몇 년 하고 엎어지면 업체는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AI 교과서 구독료 협상 결과는 이달 말이 돼서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지난달 29일 “교육청, 개발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독료가 결정돼야 하므로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장 준비 부족” vs "미래 환경 부응한 혁신"
AI 교과서를 실제 활용할 현장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실혁명 선도교사 연수를 필두로 한 AI 교과서 연수는 지금까지 완성품 없는 프로토타입만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라며 “AI 교과서 적용이 예고된 학년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의 효과적인 도입을 위해 올해 상반기 1만여 명의 ‘교실혁명 선도교원’을 양성하는 한편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하반기에는 15만 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 중이다. 또한 학교의 디지털 기반 시설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며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5학년도 AI 교과서 적용 학년은 디바이스(기기)를 완비했고, 시도교육청과 함께 내년 2월까지 전국 학교의 디바이스·네트워크를 점검·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검정을 통과한 AI 교과서 현장 안착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다음 달 2일부터 실물 AI 교과서를 웹으로 전시해 일선 학교들이 AI 교과서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한다. 올해 상반기 선발한 1만여 명의 선도 교원을 현장에 파견해 AI 교과서를 활용한 수업 설계 실습 연수도 지원한다. 올해 하반기까지 약 15만 명의 교원이 AI 교과서 연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사들의 디지털 기반시설 관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튜터 1200명도 내년에 학교에 배치한다.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미래 교육환경에 부응한 디지털 교육혁신과 학생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라고 평가했다.
교총은 "현장 교원과 시도교육감협의회, 교총이 요구한 도입 속도 조절, 인프라 개선, 교사 관리 부담 해소 등을 적극 반영한 것은 바람직하다"며 "교사의 공감‧이해를 높이고, 디지털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교육적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실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 교과서는 교사의 도움 없이 학생 맞춤 교육을 저절로 실현하는 자동 시스템이 아니다"라며 "AI 교과서가 학생 맞춤 교육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교사들이 불편·부담 없이 (교과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를 지원하고 교실 여건 조성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학부모들은 AI 교과서가 디지털 기기로 구동되는 만큼 학생들이 수업 도중 유해 사이트에 접속 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유행 때 전국적인 원격 수업이 가동됐을 당시 EBS 온라인클래스 등이 먹통을 겪었던 것처럼 인터넷 접속망에 과연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지도 우려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학부모들의 '딴 짓' 우려에 대해서는 유해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인터넷 접속 상황을 지속 점검하며 충분한 연수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부 “내년 도입 AI디지털교과서 76종 확정…국어는 제외”
앞서 정부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내년 3월 예정대로 초·중·고 4개 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도입하되, 내후년 국어와 기술·가정 과목에 확대 도입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또한 사회와 과학 과목도 예정보다 1년 늦춘 2027년부터 AI 교과서를 활용한다.
이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I 교과서 도입 로드맵 조정안’을 발표했다. 조정안에 따르면 내년 3월 AI 교과서에 적용되는 과목은 초3·4와 중1, 고1 대상 영어·수학·정보 교과다. 초등 특수교육에선 국어 과목에 우선 도입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내년에는 영어, 수학, 정보 교과의 AI 교과서를 통해 교실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는 당초 2026년 초3·4와 중1 대상 국어와 기술·가정(실과) 과목에 AI 교과서를 도입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사회·과학 과목 적용 시기도 예정보다 1년 늦춘다. 당초 교육부는 2026년부터 사회·과학 과목에 AI교과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2028년에는 완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영어와 수학 과목 도입에 우선 집중하고, 다양한 공공데이터 등이 필요한 사회와 과학은 검정 기준 등을 보완해 2027년부터 도입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국정교과서인 특수교육의 경우 국어는 내년 초등부터 AI 교과서를 도입하고, 수학은 내후년 초등부터 적용해 2027년 중학교, 2028년 고등학교까지 확대한다. 생활영어와 정보통신 교과는 계획을 바꿔 도입 대상에서 제외한다.
한편 정부가 무리하게 AI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다 결국 속도 조절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교육부 관계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제안한 2026년 이후 적용 교과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여러 과목을 도입할 수 있지만 AI 교과서가 학교에 안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영어와 수학 교과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이날 내년 3월부터 초중고 영어·수학·정보 수업에 활용될 AI 교과서 검정본을 공개했는데 검정 신청 대상 146종 중 12개 출원사의 76종(52.1%)이 최종 합격했다.
이 부총리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둔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잠자는 교실을 깨울 때”라며 “AI 교과서가 처음 도입돼 교사들이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교실과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에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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