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여자배구팀 감독 역…"배구 팬, 매력 알리고 싶어 출연"
"선수단, 유기농 채소 같은 매력…연기인생 첫 1승은 '초록물고기'"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어딘가 짓눌려 있고 쥐어짜인 듯한 인물을 계속 연기하면서 입 안에 있는 박하사탕처럼 환한 느낌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만난 영화가 '1승'입니다."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1승' 주연 배우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차기작을 고민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신연식 감독이 연출한 '1승'은 만년 꼴찌 여자배구팀 핑크스톰이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스포츠 드라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살인의 추억'(2003), '박쥐'(2009), '변호인'(2013), '사도'(2015), '택시운전사'(2017) 등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는 송강호의 대표작들과 대비된다.
송강호는 핑크스톰을 이끌게 된 신임 감독 우진 역을 맡았다. 무능하고 열정도 없었지만, 점차 1승을 향한 갈망이 커지며 전술가로 변모하는 인물이다. 그간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자주 봐 온 감독들과 달리, 용장과는 거리가 멀고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며 짜증을 내는 모습이 웃음을 안긴다.
송강호는 "'반칙왕'(2000) 이후 24년 만에 이런 캐릭터를 하는 것 같다"면서 "관객들도 오랜만에 이런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멋지고 카리스마 있고 감독다운 감독 캐릭터를 보면서 '실제로 감독님들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도 인간이니까 어떨 땐 선수들보다 못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세속적인 욕심도 내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랬던 우진이 선수들과 함께하며 마치 한 덩어리처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1승'은 코미디에만 치우치거나 여느 스포츠 영화처럼 일명 '신파 서사'를 내세우지 않는다. 웃음과 감동, 박진감을 고루 배치해 깔끔한 뒷맛을 준다.
송강호는 우진을 연기하며 해학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기는 했다면서도 "일부러 과장된 코믹 연기를 하거나 감동을 안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덤벼들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했으면 조금 뻔한, 재미없고 매력 없는 영화가 됐을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웃음과 약간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1승'은 배구를 소재로 했다는 독특함이 있잖아요. 배구의 메커니즘 자체를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분명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송강호는 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 중계방송을 챙겨볼 정도로 배구 팬이다. 그가 '1승' 캐스팅 제안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도 대중에게 배구의 매력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배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어렵지만, 잘만 영상화하면 새로운 영화 한 편을 선보일 것 같아 '한 번 의기투합해서 해보자'며 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이 작품의 묘미 역시 배구 시퀀스에 있다. 총 16명의 배우가 수개월간 훈련하고 리허설을 거친 끝에 속도감 넘치는 랠리 장면이 탄생했다. 배우들은 핑크스톰 주장 수지 역의 장윤주, 용병 유키 역의 이민지 등 연기자를 비롯해 배구선수와 모델, 무용수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송강호는 "이분들의 불규칙한 캐릭터가 서로 어울리며 극에 입체감이 생기더라"며 "풋풋하고 싱그럽고 개성이 강한 유기농 채소를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1승'이라는 제목에도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배구에서의 1승뿐만 아니라 '인생에서의 1승'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일이 안 풀릴 때도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위축될 때도 있죠. 누구나 그런 순간이 와요. 이 영화로 관객이 위로받고 '나만의 1승은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조그마한 가치라도 있는 것 아닐까요."
송강호는 배우 인생에서 최초의 1승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를 촬영했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연출가의 배려 덕에 하던 연극을 그만두고 '초록물고기'에 출연했다"며 "그렇게 올인해서 제대로 열심히 한 최초의 영화라 저에겐 1승을 거둔 느낌"이라고 기억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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