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하면 강해지고 분열하면 무너진다.” 이 주장은 국가가 겪는 분열과 갈등의 본질을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요약한 격언이다. 이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이념의 다양성과 상이한 의견을 존중하는 원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역사 속에서도 이 같은 교훈은 중요하게 다뤄졌으며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점점 더 분열이 심화되는 세밑에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이 격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념, 지역, 성별, 세대, 빈부 격차 등 여러 갈등이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사회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그로 인해 사회는 깊은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는 마치 모든 것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갈등의 간극은 더욱 깊어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사라진 채 오직 ‘적’을 규정하는 사고 방식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극단’은 단순히 맹목적이거나 폭력적인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협을 거부하고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불안’이다. 불안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불확실성에서 느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며 이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분열로 확산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이념 논쟁이나 세대 간 대립은 바로 이러한 불안의 표출이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이념 대결이나 젠더 갈등은 서로의 이해를 넘어 상대를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불안은 또한 미디어와 정치적 선동에 의해 증폭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뉴스와 정보를 선택적으로 소비하며 그 결과 다른 집단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도가 강화되며 갈등은 심화된다.
이러한 불안이 집단적 갈등으로 확대되면 대화는 단절되고 공격과 배제가 우선시되는 사회로 변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 장소나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는 극단적인 프레임을 통해 상대를 악마화하고 공격적인 언어로 대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치적 갈등 또한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이념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안보 의식 역시 문제를 심화시킨다. 극단적 갈등은 외교 정책의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안보 전략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내부 갈등이 심화되면 외부 위협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고 이는 결국 국가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쟁은 매일의 현실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그것은 다른 나라의 일로 여겨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침과 부족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용의 미덕’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을 경계하고 스스로 절제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중용을 잃어 버린 듯하다. 과시하고 증명해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균형을 상실하면 갈등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사회적 균형이 깨지면 평화와 상생의 가능성은 점차 사라진다. 지나친 자기 확신과 상대를 배척하는 태도는 결국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불안을 증폭시켜 악순환을 일으키며 극단적인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균형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평화는 상대를 이해하고, 타협하며,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론화 과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갈등을 해결하는 숙의 민주주의 모델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또 교육과 미디어는 상대를 적대시하는 방식을 넘어 공감과 협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갈라진 사회가 하루아침에 상생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설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과 관점을 존중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평화는 단순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행동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국가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25년 서울의 거리가 여전히 시위와 대립으로 계속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화합이 아닌 평화는 허망한 이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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