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수장 숨진지 64일만에 첫 추도행사…1만명 이상 구름인파 몰려
연합뉴스, 사망장소 첫 취재…벙커버스터에 축구장만한 구덩이·산산조각
(베이루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휴전 나흘째인 30일(현지시간) 저녁.
연합뉴스는 헤즈볼라의 핵심 근거지인 베이루트 남쪽 외곽 다히예 지역에서 하산 나스랄라 추도식을 직접 취재했다. 조직 수장이었던 그가 사망하고 64일만에 처음 열린 장례 일정이었다.
다히예에서 이같은 대규모 행사가 열린 것은 지난 2개월간 이스라엘군의 집중적인 공습 표적이 된 이후 처음이다.
장소는 9월 27일 나스랄라를 노린 이스라엘군의 벙커버스터 폭탄에 초토화된 헤즈볼라 본부 단지였다.
건물 잔해가 곳곳에 쌓인 축구장 크기의 구덩이 한가운데에 커다란 흰색 직육면체 구조물이 설치됐다.
폐허를 둘러싼 지상 7∼8층 아파트들 외벽은 붉은 조명으로 물들었고, 직육면체 상자에서 쏜 하얀 빛줄기들이 하늘로 향했다. 헤즈볼라가 '빛 위의 빛'이라고 이름 붙인 추도식 주제를 상징하는 듯했다.
헤즈볼라는 오후 5시 45분께 레바논 현지를 찾은 일부 외신 기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입장을 허용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1만명 이상의 추모 인파가 몰려들며 현장은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뤘다.
떼지어 행진하는 젊은 남성들, 검정 히잡을 머리 위에 두르고 삼삼오오 다니는 여성들도 있었고 부모를 따라온 어린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나스랄라 생전에 녹음된 연설 육성이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왔고, 노란색 바탕에 초록색 소총이 그려진 헤즈볼라 깃발이 나부꼈다.
참석자들은 "나스랄라를 위해", "후세인(사망한 헤즈볼라 간부의 이름)을 위해", "더 이상 굴욕당하지 않는다" 등 아랍어 구호를 외쳤다.
삼촌 두 명을 전쟁 통에 잃은 마야(33)씨도 사촌동생 라마(19)씨 손을 잡고 추도식에 왔다.
마야씨는 "슬프게 흐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나"라며 "세예드 하산(나스랄라)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어디엔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행사 몇시간 전 나스랄라가 실제로 죽은 장소를 일부 주민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연합뉴스는 한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이곳을 직접 밟아봤다. 카메라와 휴대전화기를 입구에서 수거당한 탓에 가까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추모 행사장에서 불과 몇십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헤즈볼라 보안 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참석자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참석자들도 조용히
서서 애도를 표하는 등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스랄라가 사망한 헤즈볼라 본부 건물은 약 100t(톤)의 미국산 벙커버스터 폭탄에 콘크리트가 바스러지고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는 등 기존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됐다. 주변 건물들 외벽은 찢겨나갔고, 자동차 한 대는 두 동강이 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인근 골목에서는 원인 모를 악취가 풍겼다. 엘리 자우데(36)씨는 "죽음의 냄새"라며 "이 일대를 한 번 운전하고 나면 차 안에 한참 냄새가 남는다"고 말했다.
레바논 남부 전선 취재로 유명해진 현지 언론인 알리 모르타다는 기자와 만나 "헤즈볼라를 리타니강 북쪽으로 밀어내고 자국 주민들을 귀환시키겠다던 이스라엘군의 전쟁 목표 중 달성된 것이 있나"라며 "이스라엘군은 승리하지 못했고, 나스랄라는 우리 청년들 마음속에 살아있다"라고 주장했다.
수습된 나스랄라의 시신은 비밀 장소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남성은 기자에게 "헤즈볼라가 나스랄라 매장지를 준비하고 있다"며 "오늘부터 계속 장례 행사가 이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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