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태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바이든 행정부가 진행 중인 반도체 보조금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오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정책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더불어 바이든 행정부가 HBM을 포함한 반도체 장비와 AI메모리 칩의 대중국 판매에 대한 추가 규제를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
인도계 미국 기업인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비벡 라마스와미는 지난달 26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의 폴리티코 인터뷰를 거론하며 "매우 부적절하다. 그들은 정권인수 전에 반도체 지원금 지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마스와미는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함께 '정부효율부'(DOGE)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러몬도 장관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에 기업에 약속한 반도체법 지원금을 최대한 지급하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공장 등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이다.
미 상무부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기업 중 삼성전자는 64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천만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정부 대출 최대 5억달러, 최대 25%의 세액 공제 혜택 등을 받는 것이 결정됐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바이든 정부와 보조금 지급에 관한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하고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의 산업 정책을 뒤집지 못하도록 보조금 수혜 기업과 합의를 속히 마무리하고 관련 예산을 최대한 빨리 집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상무부는 최근 인텔에 최대 78억6500만달러(약 11조원)의 직접 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인텔의 투자 지연 등으로 당초 합의(85억달러)보다는 감액된 규모다. 인텔은 당초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 프로젝트를 내년 말에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이를 2020년대 말로 연기한 상태다.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지난달초 66억달러 보조금 지급 조건을 완료해 보조금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 구축은 산업 패권 확보에 중요한 과제인 만큼 반도체 지원법이 전면 폐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대통령의 행정 권한에 따라 미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비중을 더 높이거나 동맹국을 대상으로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지원을 위한 제반 요구 조건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의 통상정책이 심각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중요하다"며 "글로벌 관세정책이나 공급망 블록화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핵심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공급망 다변화, 제3국 수출시장 개척 등 민관협력 로드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추가 규제안도 반도체 업계를 타격했다. 지난달 27일 블룸버그 통신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중국 반도체 관련 장비와 인공지능(AI) 메모리칩에 대한 추가 수출 규제안이 이르면 다음 주 발표될 것이라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여기에는 HBM 관련 신설 규제 조항도 포함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HBM 공급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데이터 저장을 담당하는 HBM은 AI에 필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같은 메모리칩 제조업체들이 이 같은 조치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식통들은 이번 규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기는 공식 발표 전까지는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번 규제는 중국 화웨이의 공급업체 일부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초안 단계에서 화웨이의 공급업체 6곳을 제재하는 방안이 고려됐지만 현재는 이들 중 일부만 거래 제한 명단에 추가될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에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안에 따르면 화웨이의 주요 협력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SMIC(중신궈지)가 운영하는 반도체 공장 두 곳도 제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들은 기업 100곳 이상이 추가 제재 명단에 오를 것이라며 제재는 반도체를 실제 제조하는 시설보다는 반도체 제조 장비를 만드는 기업에 집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미국의 추가 제재 방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된다. HBM 관련 제재 조항이 포함되면 AI에 필수 요소인 HBM 생산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장 판매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또 AI 메모리칩에 대한 추가 규제로 인해 중국 진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업계는 전망했다.
아울러 반도체 제조 장비를 만드는 기업들이 집중 제재 대상이 되면 국내 기업들의 장비 조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또 제재로 인한 중국 시장 진출 제한은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같은 대중 추가 제재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사업 전략과 글로벌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관련 기업들은 대체 시장을 발굴하거나 기술 혁신 가속화, 미국 외 기타 국가와의 협력 강화 등의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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