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적인 왕자들의 경영스타일
왕자구 회장은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와 1969년 휸다이건설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 뒤 휸다이자동차와 휸다이자동차써비스의 경영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경영인으로서 수업을 닦아 왔다. 또 휸다이산업개발 등 건설업종에서도 경험이 있고 관심이 많았다.
사실상 자신이 창업한 휸다이정공을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메이커로 키웠다. 그는 휸다이정공 회장 때 ‘갤로퍼 신화’ 를 창조하면서 자동차 경영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표현력이 없을 뿐 생각은 깊다.”
왕자구 회장 측근들의 한결같은 인물평이다.
그의 한 측근은 “아랫사람을 다루는 것과 앞날을 생각하는 경영적인 시각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왕자구 회장의 리더십을 인정하는 말이다. 특히 사람을 쓰는 것은 왕자헌 회장과 매우 대조적 으로 ‘경쟁우위 ’ 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였다.
왕자헌 회장은 경영성과 등에 따른 문책성 인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자구 회장은 부회장급 경영진을 두 번이나 교체했다가 다시 쓰기도 했다. 인재가 필요하면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다시 쓰기도 하는 경영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왕자구 회장은 '왕자의 난' 때 동생인 왕자헌 회장 편에 서있었던 경영진을 많이 데려다 쓰는 포용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휸다이자동차 계열사인 휸다이캐피탈의 고위급 경영진과 휸다이자동차 전략기획실 임원 등은 모두 과거 왕자헌 회장 쪽 사람들이었다.
또 왕자헌 회장과 달리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다는 얘기도 있다.
왕자구 회장은 주변 사람이 놀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일부 측근들은 왕자구 회장을 만나고 나와서 “나는 그런 줄 몰랐는데. 회장님이 저 정도로 많이 알고 있나” 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판단이 서면 빠른 결정을 내려 아랫사람들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을 부릴 줄 아는 경영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왕자헌 회장은 다른 스타일이었다.
아랫사람이 결정한 것을 추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다보니 간신치 회장 등 이른 바 가신 인사라는 사람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는지적이다.
특히 왕자헌 회장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 주로 만났다.
반면 왕자구 회장은 교제의 폭이 넓다는 평가다. 왕자구 회장과 왕자헌 회장 두 형제 간 경영스타일이 매우 대조적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왕자헌 회장 측근의 설명이다.
“사장단 회의에 들어가 보면 왕자헌 회장은 각 계열사 사장에게 맡기는 경영스타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장들이 보고를 하면 ‘잘 해보라’ 고만 했다 일일이 지적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확인하는 꼼꼼한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왕자구 회장은 반드시 확인하는 스타일이다. 두 형제간 그런 차이점이 뚜렸했다.”
[다큐소설 왕자의난4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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