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철도'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가

[데스크칼럼] 'K철도'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가

머니S 2024-11-29 08:00:00 신고

3줄요약

경북 봉화군 한 오지 마을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철도 영화 '기적'.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철도인 동네에 정작 기차역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긴 철길 위를 건너 마을 안팎을 오가다가 목숨을 잃었다. 정부의 외면에 사람들은 힘을 모아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를 세웠다.

영화적 요소가 가미되긴 했지만 이는 1980년대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국에서 철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단순 인프라를 넘어 교통 약자들의 발과 다름없는 복지이자 지역 균형발전의 중추 역할을 했다. 왜 국가 예산을 투입해 적자 노선을 유지해야 하는지, K철도의 성장과 역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영화는 잔잔하고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철도산업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수많은 일자리와 연결사업을 창출했고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시장에도 진출해 K건설의 기술을 알리는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철도기업들이 수년간 보여준 민낯은 어떤가. 반복되는 안전사고와 기관간 이익 다툼, 최근의 파업 예고 사태까지. K철도라는 수식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산하 서울교통공사의 제3노조(올바른노동조합)는 이달부터 준법 투쟁에 돌입했다. 올바른노조는 임금 인상과 안전 인력 채용 규모 등에 대해 사측과 협상중이다. 공사 제1노조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인적 구조조정과 1인 승무제 도입 철회, 산업재해 예방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협상이 결렬되면 노조는 다음 달 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소속 제2노조도 쟁의행위 찬반 투표의 일정을 확정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운행하는 수도권 1호선과 3·4호선, 경의중앙선, 서해선 등 일부 구간은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

철도 노사 이슈는 외부에서 볼 때 노조와 사측 어느 한쪽이 절대 선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산업의 구조 문제에서 기인한다. 시스템 자동화에 따른 감원의 필요성과 적자 보전을 위한 요금 인상, 관리의 효율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기관간 업무 조정 등은 중앙정부 산하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 SR(수서고속철도) 등 철도기업들의 이권 갈등을 촉발시켰다.

소위 '철발통 중의 철밥통'으로 불리는 철도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노사 갈등을 넘어 운영권 다툼과 안전관리 부실 사태에, 눈먼돈과 다름없는 국가 예산을 줄이고 민영화를 이뤄야 한다는 논리도 힘을 얻게 된다. 국가 공공재가 대의보다 사익에 휘둘리며 정치 공약 등 사유화에 이용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철도 선진화를 명분으로 2000년대 감행된 옛 철도청의 코레일과 국가철도공단 분리도 기득권의 이해관계 대립과 책임 회피를 공고히 만들었다. 국가철도공단은 철도 건설사업을 발주·시공하는 기관으로 유지·보수와 관제 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다.

철도 건설과 유지·보수 업무를 분리해 전문성을 키우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네 탓 공방이 반복됐다. 이에 두 기관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마저 전개됐다. 기관 통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유지·보수 업무를 놓고 건설사업자 철도공단과 운영사업자 코레일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형국이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관련 법안의 개정을 추진할 전망이다.

철도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만성 적자에 따른 낮은 임금과 노동시간 불균형, 운행을 볼모로 노조에 휘둘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발주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의 경우 상대적인 고임금을 유지할 수 있어 임금 상향 평준화를 기대하는 노조 일부의 통합 주장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불명예 퇴진을 이어가는 코레일 사장 자리는 '낙하산의 무덤'으로 표현되는 웃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코리아 레일웨이 베리 땡큐."

지난 10월 필리핀의 철도 건설현장을 취재하며 만난 수십명의 호텔리어와 공항 직원들은 출장 목적을 밝히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철도는 훌륭하다. 늘 감사하다"는 환호를 받았다.

해외에 나가면 너도나도 애국자가 된다. K철도에 대한 찬사를 들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K철도의 글로벌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한 기자로서 사명감을 느끼는 한편에는 우려도 커진다. K철도가 정체하지 않으려면 국토부와 국회가 바뀌어야 한다.

필리핀에서 만난 한 인사는 과거 경부선·호남선 등 굵직한 철도 설계를 담당하며 갖은 협박과 회유에 시달렸던 일화를 털어놨다. 국회의원은 물론 이장 등 군소 지자체도 나서 왈가왈부 관여하는 것이 철도사업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죽으면 노선 설계를 바꿀 거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정치 비리는 필리핀의 철도사업에서 유사하게 일어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천문학적 투자를 수반하고 경제 이익의 기반이 되는 철도사업이 많은 이해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 구조 문제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화한 한국이 수십년 전 개발도상국 때와 동일한 고민을 안고 있어선 안된다. 철도기업과 정부·정치권은 기술 발전의 노력 만큼 노동 문제 해결과 시스템 선진화를 향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김노향 머니S 건설부동산부장 김노향 머니S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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