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한국청소년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딛었던 서울독립영화제. 지난 50년 간 몇 차례 이름은 바꾸었지만, 올해의 슬로건이기도 한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실천을 놓은 적이 없다. 원석과 같은 영화를 발견하고, 창작자들의 도전과 용기에 늘 같은 강도의 디딤석이 되어 왔던 곳. 누적 상영작 2700편, 김성수, 임순례, 류승완, 나홍진, 연상호, 변영주 감독 등의 출발선이기도 한 한국 영화사의 주요 거점인 서울독립영화제가 어느 때보다 험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독제의 지난 50년을 예우하고, 앞으로의 안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마리끌레르>가 서울독립영화제 50주년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그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집행위원장과 함께 지난 50년 서독제가 영화라는 이름 아래 일궈온 것들, 앞으로 나아갈 50년에 대해 이야기나눴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을 20여 일 앞두고 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금의 위원장님에게는 짊어져야 할 무게로, 혹은 단단한 심리적 지지로도 느껴질 것도 같은데요. 요즘 어떤마음으로 개막을 준비하고 있는지요.
10년 전 40주년을 치르던 때가 떠오릅니다. 매해 중요하지만 50주년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영화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누적된 시간의 무게를 느끼고 영화제의 역사를 잘 정리하자는 포부도 있었는데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부족한 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부담도 있지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큽니다.
서독제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이로써 지난 50년의 시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큰 맥락 안에서 서독제가 한국 영화에 기여한 바가 크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최고(最古) 최대(最大) 독립영화제라는 수식이 서독제를 잘 설명합니다. 정부에서 시작한 영화제라 관변의 성격도 갖고 있었죠. 저축 장려와 같은 정부 시책이 반영되던 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창작하는 청년 영화인에겐 중요한 무대였습니다. 그들의 영화가 평가받는 유일한 행사였고, 상금이 상당해 수상하면 다음 영화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정부 주도 행사였지만 영화 출품자나 심사위원 모두 영화적 부분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김홍준, 박광수, 김의석, 강제규, 김성수 감독 등이 서독제 전신 영화제의 수상자입니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주역으로서 한국 영화의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분들이죠.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출범하며 영화제가 크게 도약합니다. 변화를 시도한 첫해에 단편 <현대인>으로 류승완 감독이 대상을 수상하고,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를 완성해 극장에서 개봉하며 전국 7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독립영화 돌풍의 독보적 사례였죠. 이후 천만 영화가 등장하고 대기업 독과점 체제가 공고해지며 영화 산업의 명암도 분명해졌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서독제는 주류 영화의 반대 편에서 도전적이고 패기 있는 영화와 영화인을 꾸준히 발굴해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을, 세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의 출발선이 서독제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서독제가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첫 무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과거 영화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우리 영화제의 상금과 시상은 감독들에게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감독들이 대개 상금으로 다음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수상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든 영화계에 계셨겠지만, 분명 도움과 격려가 되었을 겁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대성공을 거두고 2000년 이후 영화 인프라가 확대되며 서독제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조정과 변화가 컸어요. 서독제는 섣불리 국제영화제를 표방하지 않고 국내 영화제를 고수하며 좀 더 마이너리티 창작자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김보라 감독은 <벌새>로 세계 59관왕을 달성하고, 이옥섭 감독은 <메기>로 실력을 입증하며 많은 팬을 이끌고 있습니다. 서독제는 이보다 10년 전 단편으로 그들을 만났습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영화감독이자 배우 구교환, 배우 전여빈 등 지금의 결과를 알 수 없던 영화인의 미지의 출발에 기꺼이 동행했습니다. 낯선 영화와 얼굴들이 어쩌면 서독제의 본질이자 힘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찍이 감독의 재능과 용기를 발견하는 서독제만의 독창적인 시선과 선정 기준이 크게 작용했을 테고요.
서독제는 다른 영화제와 비해 독립영화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수
자와 약자의 편에 선 작품이 많습니다. 세상에 대해 관심이 열려 있는 작품이 환대받는 경향이 있고, 영화적으로 거칠고 낯설어도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면 높이 평가받습니다. 이와 동시에 장르적 영화를 차별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때 독립영화를 무겁게 느끼는 영화인과 관객이 많았는데, 지금은 경계가 없습니다. 영화들이 다채롭고 스펙터클합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백30편이 늘어난 1천7백4편의 장·단편 영화가 출품돼 역대 최다 편수를 기록했습니다.
한국 영화 위기론 속에서 거둔 성과이죠. 2022년 1천5백74편에서 2년 만에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저도 매번 놀랍니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창작자를 보편화했습니다. 휴대폰 심지어 AI 같은 소프트웨어만으로 영화제작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천문학적인 자본을 들인 영화도 소형 카메라로 빚어낸 단편도 모두 영화라고 명명합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예술적 민주주의라고 할까요. 이것은 뚜렷한 추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또 하나 상업영화 제작이 위축되면서 유휴 인력이 영화 연출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업영화 현장에 있다고 상업영화만을 지향하진 않으니까요.
50주년을 기념하며 올해 가장 공들인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서독제와 독립영화의 역사와 발자취를 멋지게 정리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공을 들였다기보다 필수적인 것을 했습니다. 40주년에 기념 책자 <21세기의 독립영화>를 출간해 좋은 평을 얻었습니다. 한국 독립영화를 집약한 서적이 워낙 귀했기 때문입니다. 50주년 기념 책자 <시대정신 독립영화>는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서독제와 독립영화의 역사와 성취를 보완하고, 최근 10년간 독립영화의 흐름을 업데이트한 아카이빙 서적입니다. 50주년을 맞아 독립영화 베스트 100선을 발표했습니다. 누적 작품 2천7백 편 중 단편 50편, 장편 50편을 선정했 는데, 수많은 걸작이 누락되었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영화제의 데이터를 정돈한 것이 성과입니다. 이 외에 <다섯번째 흉추>의 박세영 감독이 아카이브 푸티지로 트레일러를 만들어주었고, 서독제의 다정한 친구이자 형제인 구교환 감독이 50주년 개막 영상을 제작해주었습니다. 두 분 모두 흔쾌히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드립니다.
서독제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 전액 삭감에 맞서 영화계와 함께 예산 복구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독립영화가 아니다”라고 하셨지요.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지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필이면 50주년을 맞는 해에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제 눈과 귀를 의심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9월 중순이 지나 영화계에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영화인의 뜻을 알려야 한다는 의견에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8천 명에 다다랐습니다. 감동적인 연대였습니다. 힘이 났고, 힘을 내야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주는 것보다 영화제의 역사와 전통, 영진위와 한독협이 함께 일군 소중한 성과가 폄하되는 것이 가장 답답합니다.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 모두 좀 더 단단해지는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50주년을 기점으로 서독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셨나요?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려 하십니까?
올해 기획 개발 프로젝트 ‘시나리오 크리에이티브 LAB’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어요. 독립영화 기획 개발에 예산 규모를 한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독립영화는 평균 제작비 5억원 내외, 최대 10억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독립영화라고 시나리오 단계에서 저예산 트랙의 영화적 상상력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서독제는 마이너리티 영역에 있는 창작자에게 중심축을 굳건히 두면서도, 한편으론 국내 최대 독립영화제로서 영화 산업의 최전선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 갭이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방편으로 산업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독립영화로 끌어내리고 싶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올라간다는 것과 끌어내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지향입니다. 산업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이상하고 모험적인 영화가 생태계에서 당당히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독제가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는 가운데 끝내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화입니다. ‘독립’의 의미는 시기마다 바뀌었습니다. 2000년 이전에는 영화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에 몰두했고, 2000년 이후에는 한국 영화에서 사라진 다양성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주류 제작 시스템의 대안으로 명명됩니다. 유럽에서는 실험영화와 예술영화에 가깝고요. 한국은 모든 것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독립이건 예술이건 ‘영화’로서 손색없고, ‘영화’로서 지향이 분명해야 합니다. 각자 떠올리는 바가 다르겠지만, 정말 좋은 영화가 우리 영화제를 통해 계속 나오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문득 뒤돌아봤을 때, 서독제와 함께한 20년의 시간 중 떠오르는 장면이있나요? 어떤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지요.
2017년 지금은 사라진 명동 중앙시네마에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했고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접근성과 시설이 뛰어난 CGV에서 장소를 옮긴 터라 결과적으로 관객은 많이 줄었지만, 꿈에 그리던 전용관에서 영화제를 개막한다는 사실에 많이 기뻤습니다. 뒤풀이 장소가 극장 뒤편에 있는 ‘시네마호프’였는데요.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영화학교 졸업을 앞둔 단편 감독과 배우들이 “앞으로 뭐 하면서 살까?” 하며 진심으로 알바 근황과 걱정 어린 대화를 나누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 모두 장편을 만들었고, 몇몇은 누구나 알 만한 영화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대략 15년 전 우리 모두 끝을 알 수 없었습니다. 미지의 가능성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어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고, 감사합니다. 단수의 기억으로 대체하기엔 너무 귀한 복수의 기억들이 밀려옵니다. 50년 동안 영화제를 오간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독립영화제 50주년을 이뤄주셨습니다. 추상적이지만,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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