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 제재 피해 러시아에 기술 판매

중국 기업들, 제재 피해 러시아에 기술 판매

BBC News 코리아 2024-11-28 13:58:29 신고

3줄요약
중국 국기, 러시아 크렘린궁, 마이크로칩 그래픽
Getty Images

BBC 분석 결과 중국 기업들이 제재를 우회해 군사 무기 제작 시 필요한 민감한 기술 장비를 러시아에 판매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9월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이후에도 약 2억달러(약 2790억원) 상당의 물품을 러시아로 보낸 이 같은 기업 네트워크에는 ‘신노 일렉트로닉스’도 있다.

이들이 보낸 물품 중에는 마이크로칩, 카메라, 내비게이션 등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사용되는 러시아 무기에 필수적인 기술 장비도 있다.

BBC의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러시아가 무기 제조 시 필요한 부품을 확보할 수 없도록 마련된 미국의 제재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제재 조치는 전 세계 기업들이 러시아와 함께 일하지 못하고, 만약 이를 어길 시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서 차단해 전 세계적으로 무역하지 못하도록 처벌하고자 마련됐다.

그러나 BBC는 일부 제재 대상 기업들이 어떻게 이를 우회해 러시아와 대규모로 무역할 수 있었는지 밝혀냈다.

BBC가 미국의 무역 데이터 집계 업체 ‘임포트지니어스’의 러시아 세관 기록을 분석한 결과, 2022년 10월~2024년 4월 기준 신노 네트워크는 러시아로 민감한 물품 약 2만5000건을 보냈다.

그리고 이 중 76%가 고정밀미사일과 드론 등의 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칩이었다.

특히 마이크로칩의 경우 러시아가 자국 능력이 부족해 수입에 대부분 의존하는 분야로, 현재 이 분야의 주요 제조 지역은 대만, 한국, 중국, 미국이다.

BBC는 신노 네트워크가 러시아로 보낸 수백만달러 상당의 마이크로칩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드론과 순항 미사일에서 발견한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아날로그 디바이스’사 등 미국 기업의 제품임을 밝혀냈다.

두 기업 모두 자신들의 제품은 판매된 이후 여러 번 재판매되기에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추적하기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미 의원들로부터 해당 기술이 러시아 무기에 사용되지 않도록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아날로그 디바이스는 BBC에 자신들의 제품이 러시아로 ‘불법 우회’되고 ‘오용’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신노 네트워크 이면의 한 부부

신노 일렉스토닉스는 린 칭과 그의 아내 펭 민보가 운영하는 업체로, 이들 부부의 이름은 신노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눈에 띈다.

BBC 분석 결과, 남편 린 칭은 신노 네트워크에 속한 세 기업의 이사 겸 주주를 맡고 있으며, 펭은 다른 두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회사들 중 일부는 사무실 주소가 같거나 사명이 비슷하다.

펭은 신노 일렉트로닉스가 제재 대상에 오른 이후에도 자신의 이름 혹은 이 네트워크에 속한 다른 기업 이름을 통해 약 2600만달러 상당의 미국산 칩과 기술 장비를 러시아로 수출했다.

또한 신노 일렉트로닉스는 올해 4월 러시아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전시회의 후원사였으며, 이 부부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BBC는 여러 경로를 통해 린 칭 부부와 신노 네트워크에 속한 다른 기업들에 연락하고자 노력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한편 다국적 로펌 ‘애셔스트’에서 제재 및 수출 통제와 관련해 기업에 자문하고 있는 알렉산더 드미트렌코 변호사는 회사 이름이나 주소가 미국의 제재 목록에 있는 기업과 매우 유사하면 “적신호”로 본다고 설명했다.

“마치 버섯처럼 새로운 기업이 불쑥 탄생하는 건’ 흔한 일이며, 이러한 신생 기업들은 사실상 서로 동일한 회사라는 것이다. 즉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회사들은 제재 대상이 아니기에 제재 대상이 된 기업을 대신해 상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하거나, 수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추락한 드론을 살펴보는 경찰관의 모습
Reuters
우크라이나 장교가 추락한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한 이후 미국은 중국이 핵심 부품을 공급해 러시아의 전쟁 기계를 돕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이에 중국 등의 다른 국가가 러시아에 핵심 기술을 공급하지 못하게 막고자 여러 차례 제재를 실시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무장을 돕고 있다는 의혹을 거듭 부인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대화를 촉구하는 입장이다.

BBC의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주영국 중국 대사관은 중국이 “이중용도 물품에 대해서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달 미국 재무부는 앞서 제재 회피를 꾀한 “개인 및 단체” 275곳을 추가로 제재했다.

여기에는 린과 펭은 물론 신노 네트워크에 속한 다른 기업들도 포함돼 있었다.

제재 대상이 되면 미국 내 이들의 재산은 동결되며, 미국 은행들은 이들에게 자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중국 은행으로부터도 거절당하게 된다. 중국 은행들이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르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드미트렌코 변호사는 “아무도 그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제재 대상이 되면) 그 어떤 주요 은행도 당신과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주요 고객도 당신을 꺼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는 주로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는 기업들에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 이들은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단절되면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드미트렌코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규제 당국이 러시아와 중국 간 거래하는 소규모 기업, 특히 이름과 세부 정보를 쉽게 변경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수출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한다.

BBC는 지난 10월 홍콩에서 열린 전자제품 박람회에서 제재를 받지 않는 중국 마이크로칩 기업의 영업 관리자들을 만나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사업을 이어 나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담당자는 BBC에 자신의 회사와 거래하는 러시아 소재 고객 대부분이 키르기스스탄이나 홍콩 내 중개업체와 같은 제3자 회사를 통해 결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회사도 러시아 국영 VTB 은행의 상하이 지점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침공한 2022년 2월 24일부터 미국 금융기관에 보관된 VTB 자산은 동결된 상태다.

BBC가 이에 관해 연락하자 모스크바 소재 VTB 대외홍보팀은 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러시아에 인쇄 회로 기판을 납품하는 회사의 영업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여성 담당자는 비행기로 실어 나르거나, 중국 서부 신장 지역의 국경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지나는 트럭으로 운송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기업들은 자사 상품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 굳이 그리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부품이 무기에 사용되는지 아닌지는 상사가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즈니스가 우선입니다.”

추가 보도: 올가 샤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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