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술을 마신 뒤 블랙아웃 (과음으로 인한 기억상실 현상)이 된 A씨가 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던 A씨는 술 때문에 기억 상실한 것도 처음인데다, 술집에서부터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하기만 하다.
A씨는 가해자가 GHB (물 뽕)을 사용한 것 같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일단 성폭행 피해를 신고는 했는데, 경찰에 별도로 가해자의 GHB 사용 여부에 대한 수사를 요청할 수 있을지, 변호사에게 자문했다.
사연을 들은 변호사들은 A씨가 GHB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GHB 피해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더신사 법무법인 정찬 변호사는 “A씨의 진술 대로라면 GHB 피해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A씨의 기억이 없는 상황임에도 CCTV를 확인해 보면 정상적인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피의자가 변호인을 선임해 대응하면 GHB 피해로 인한 범죄가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법무법인 심앤이 심지연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약물을 잡는 방법은 피해 직후 곧바로 해바라기센터에 가서 피검사를 받거나, 술자리의 술잔에서 약물이 검출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흔히 사용되는 GHB의 경우 체내에서 배출되는 속도도 너무 빨라서 잡아내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신고가 늦어 피검사도 무의미해진 상황이라면 현실적으로 약물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약물은 가해자가 직접 사용하는 장면이나 목격자가 있어야 증거로 쓸 수 있다”며 “심지어 가해자가 약물을 구매한 내역까지 있어도 사용하는 장면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부연했다.
“그래서 조사를 요청하더라도 경찰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심 변호사는 덧붙였다.
법률사무소 HY 황미옥 변호사는 “실제로 강제수사가 진행되려면 ‘평소와는 달랐고,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는 정도의 의심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이 약물을 사용한 사정에 대한 근거자료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블랙아웃’ 주장이 준강간 피해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
변호사들은 A씨가 상대방을 준강간 혐의로 고소했다면, 블랙아웃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블랙아웃을 주장할 경우, 상대방이 준강간 혐의에서 벗어날 빌미를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이엘 민경철 변호사는 “현재 A씨는 준강간 피해자로서 고소하고 합의금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며 “그러나 당시에 A씨가 블랙아웃이었다면 ‘동의했으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할 뿐’인 것으로 판단해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황미옥 변호사는 “준강간의 경우 피해자가 대부분 기억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자 자신도 사건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블랙 아웃 주장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민경철 변호사는 “준강간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인 상대방을 간음한 죄”라며 “벌금형조차 규정되어 있지 않아 혐의가 인정되면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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