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기업인들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문제가 대두되면서 가업승계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기존의 친족 승계 중심의 제도가 현재 중소기업이 겪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2022년 기준 55.3세로 10년 전보다 4세 증가했다. 특히 60세 이상 경영자 비율은 같은 기간 14.1%에서 33.5%로 2배 이상 늘어났다. 경영자 고령화 속도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고령화로 은퇴 시기를 앞두고 있지만 승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친족 승계 의지를 가진 중소기업 중 약 20.5%는 자녀가 가업 승계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전체 중소기업의 20.4%는 적절한 후계자가 없는 상태이며, 후계자가 없는 기업 중 30.7%는 M&A를, 9.4%는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기업 후계자 부재와 경영 승계 실패가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업의 후계자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기업의 역할인 고용 유지는 물론 지역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고령화 시달리는 韓 중소기업, 친족승계 중심 가업승계제도 실효성 도마
현재 한국의 가업승계 제도는 주로 친족 승계를 지원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 공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최대 600억 원까지 상속 공제가 가능하며, 증여세에 대해서도 일정한 공제 혜택이 제공된다.
그러나 이 같은 혜택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건과 복잡한 사후 관리 규정을 지켜야만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속세 공제를 받으려면 가업을 최소 10년 이상 운영해야 하며, 상속 이후에도 동일 업종을 유지하고 매출과 자산 비율의 큰 변동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규정은 대다수 경영인들이 가업승계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경영 환경에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세 경영자가 새로운 산업으로의 확장이나 사업 구조 조정을 고려할 경우, 공제 혜택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속 및 증여세율이 최대 50%에 달하며, 이는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높은 세율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자산 이전을 꺼리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영 승계를 포기하거나 M&A를 선택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이다.
반면 한국과 유사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가업승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일본 정부는 사업 승계 펀드 조성, 상속세 감면, M&A 지원 시스템 구축 등 종합적인 접근을 통해 후계자 부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스미토모 은행의 'Alliance 리서치 플랫폼'이 지목된다. 이 플랫폼은 사업 승계를 희망하는 중소기업과 후계자를 연결해주는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방 은행인 야마구치 은행은 서치펀드 모델을 도입해 젊은 경영자가 지방의 중소기업을 인수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일본의 후계자 부재율은 2016년 66%에서 지난해 54.5%로 감소했다. 흑자기업 폐업률 역시 같은 기간 64%에서 52.4%로 줄어들었다. 일본은 정책 금융기관과 민간 금융기관, 지역 사회가 협력해 기업 승계 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며, 중소기업 생태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세제 개편부터 후계자 양성·컨설팅까지…가업승계 실효성 확보 시급
중소기업은 국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산업 생태계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의 가업승계 제도는 단순한 상속 문제를 넘어, 중소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 전반에 걸친 중요한 과제로 지목되는 이유기도 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업승계 제도의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선 세제 개편뿐 아니라 법률, 금융 등 전반적인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가업승계 서비스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속 및 증여세율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사업 재편과 확장을 위한 요건을 완화해 가업승계가 이뤄지더라도 유연한 경영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사업 승계 펀드 및 M&A 지원 시스템을 구축, 후계자가 없는 중소기업이 폐업 대신 새로운 경영자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민간과 공공기관이 협력해 기업 승계 전문 컨설팅과 금융 서비스 제공 체계 마련 등이다. 기업 경영 경험이 없는 후계자에게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실효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제도가 중소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폐업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실효성 있는 개편을 통해 중소기업의 승계를 지원하면, 이는 국가 경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거라는 분석이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다양한 승계 방식을 포괄하는 제도와 전문적인 금융 및 컨설팅 서비스를 결합해, 중소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업승계가 무조건 가족뿐만 아니라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현실과 괴리가 큰 사후관리 요건 등을 과감하게 줄이는 식으로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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