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 내 찬반 팽팽…환율·가계부채 우려 남아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한국은행은 28일 경기 둔화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시장 예상을 뛰어넘어 기준금리 연속 인하라는 긴급 처방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 동결 관측 우세…물가 여건은 충족
대부분 시장 참여자들은 한은이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봤고 인하 전망은 소수였다. 이번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이 '깜짝' 인하로 평가되는 배경이다.
물가 지표만 보면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된 상태이기는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2.9%) 이후 5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며 안정세를 나타냈다. 9월(1.9%)부터는 1%대로 내렸고 10월에는 1.3%로, 2021년 1월(0.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연 2%)에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더 커졌다"고 언급했다.
이어 10월 간담회에선 3년 2개월 만의 통화정책 전환 배경을 설명하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과정은 이미 한 사이클이 끝났다"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시장이 금리 동결 전망에 무게를 실었던 것은 최근 한은이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안정을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지난 7~8월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대출 급증을 경계하며 이번 기회에 금리 인하로 경기를 부양하던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이달 5일까지도 "금리 인하가 민간 신용을 확대해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듯했다.
◇ '실기론' 의식한 듯…'트럼프 2기'에 "내년은 늦다"
정치권에서 빗발치는 추가 금리 인하 요구에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한은에서 지난주께부터 변화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3분기 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4분기 수출 실적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당장 내년 성장 전망에 경고등이 들어온 것이 결정적 계기로 보인다.
한은은 이를 반영해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 성장이 잠재 수준(2%)을 밑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정책 등으로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주력 산업이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깔렸다.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 이례적으로 높은 1.3%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2분기 -0.2%로 역성장한 데 이어 3분기에도 0.1%에 그치며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특정 대기업 그룹이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이고, 부동산 신탁회사가 경영난에 빠지는 등 금융시장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돌출하기도 했다.
이에 한은이 '내년 1월은 너무 늦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2월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하지만 한은은 올해 금통위 회의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한은은 이미 지난 8월 금리를 동결하면서 실기론으로 호되게 진통을 겪었다.
◇ 1,400원대 환율과 가계부채 불씨…외환·금융시장 안정 과제
한은은 금리 인하 결정으로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난제를 안게 됐다. 이 때문에 금통위 내에서도 금리 인하를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금리 인하에 따른 원화 가치 약세로 원/달러 환율의 상승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미국 달러화 강세의 영향에 1,400원대가 '뉴노멀'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올라왔다.
미 대선 이후 국내 시중자금이 미 증시 등으로 이탈하는 흐름이 한층 뚜렷해진 점은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하는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이 총재도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굉장히 높게 올라 있고 상승 속도도 빠르다"며 환율이 통화정책 고려 요소가 됐다고 언급했다.
가계부채 리스크도 여전히 '불씨'가 남은 상태다.
지난 3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천913조8천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 수요가 미처 가라앉지 않았다.
정부의 거시건전성 관리 강화와 은행권의 인위적인 대출 금리 인상 등으로 어렵사리 억제해오던 가계부채 증가세를 이번 금리 인하가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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