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키이우] 공습에 겁에질린 목소리, 가게는 성업중…전란·일상의 1주일

[여기는 키이우] 공습에 겁에질린 목소리, 가게는 성업중…전란·일상의 1주일

연합뉴스 2024-11-27 09:23:32 신고

3줄요약

15시간 버스 달려 키이우행…도심 드론 공습에 대사관 폐쇄까지 불안 증폭

공습 경보에 긴급히 짐싸고 방공호 대피…'완전한 종전' 못믿는 현지 민심

키이우 인구는 증가, 제건 협력 기대감…"우수한 기술 한국과 협력 기대"

우크라이나 키이우 버스터미널 인근 모습 우크라이나 키이우 버스터미널 인근 모습

(키이우=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버스터미널 인근 모습. 공습으로 외벽이 파손한 고층 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prayerahn@yna.co.kr

(키이우=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우크라이나 심장부 키이우에는 엄혹한 전란의 현실과 예상 밖으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혼재돼 있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버스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도록 달렸다. 15시간 지나 키이우 버스터미널에서 내렸을 때 시민들은 여느 도시에서와 비슷한 모습으로 거리에 나와 있었다.

약간만 눈을 돌리면 포격으로 외벽이 부서진 고층 건물이 보인다.

미사일 120발과 드론 90기가 전날 우크라이나 전역을 날아들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키이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10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주택 밀집가의 5층 아파트는 드론 공습으로 지붕이 뚫어졌고, 다음 날까지 건물 잔해가 남아 있었다.

공습 지역 주민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듣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상점가는 성업 중이었다. 심지어 순환 정전 중에도 가게들은 손님을 맞았다.

공습경보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울렸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대사관이 일제히 대사관 일시 폐쇄를 공지했던 지난 20일엔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

키이우 시내 한 호텔의 지하 방공시설 키이우 시내 한 호텔의 지하 방공시설

(키이우=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지난 20일(현지시간) 키이우 시내 한 호텔의 지하 방공시설 모습. 공습경보에 방공시설로 내려온 투숙객들이 경보가 해제되길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prayerahn@yna.co.kr

이날 공습경보는 5∼6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됐다. 황급하게 인터뷰 일정을 뒤로 미룬 채 숙소에 풀어놓은 짐을 모두 다시 싸고 방공호에서 대기했다.

방공시설 내 시민들의 표정은 예상외로 차분했다. 시내 지하철과 주요 시설 지하층 곳곳에 자리 잡은 방공시설에는 사람들이 몰렸고, 경보가 해제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경보 해제가 안심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시민들은 알았다. 급기야 21일 새벽엔 드니프로 지역에 러시아의 신형 탄도미사일이 떨어져 우크라이나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우크라이나인들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묻고 다녔다. 전쟁에 지쳤다는 시민, 끝까지 싸우자는 군인, 이 와중에 러시아로 파병한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역 언론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가지 공통된 반응은 푸틴 정권의 러시아가 존속하는 한 영구적 분쟁 종식은 없을 거라는 얘기다.

시시각각의 공포에도 일상을 내려놓지 못하는 키이우 시민들의 모습 속에는 완전한 종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만성적 불안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리고 완전한 종전이 이뤄지기 전엔 어느 지역도 안전하지 않다고 시민들은 믿고 있었다. 다만, 물류 사정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방호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 수도 키이우여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곳으로 몰렸다.

포격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학교,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참전용사를 치료하는 자원봉사 단체 등을 찾아다니면서 종종 목격한 것은 키이우 시내 도로의 교통체증이다. 오후 4∼7시쯤 도심의 도로 곳곳은 차들로 막혔다.

키이우 시내 도로 키이우 시내 도로

(키이우=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지난 22일(현지시간) 키이우 시내의 한 도로에 차량들이 가득 찬 모습. prayerahn@yna.co.kr

이는 키이우 인구가 전란 속에서도 갈수록 증가하는 방증이라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회의 주택·인프라 분야 정책 자문 기구인 임시조사위원회 소속 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페드로 볼로셴코씨는 수년간 공식 통계를 발표하지 않은 키이우 인구가 현재 400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300만명 정도였던 키이우 인구 가운데 100만명 정도가 개전 초기에 피란을 갔지만 이후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다시 몰렸다"며 "키이우의 인구는 전쟁 전보다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인터뷰하는 페드로 볼로셴코씨 인터뷰하는 페드로 볼로셴코씨

(키이우=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우크라이나 국회의 주택·인프라 분야 정책 자문 기구인 임시조사위원회 소속 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페드로 볼로셴코씨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키이우 곳곳에 소규모 주거지가 더 늘었고, 교통체증도 많이 보인다"며 "재건 사업 가운데 한국과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는 키이우의 스마트교통망 구축 사업과 취약한 철도교통망 건설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의 안보 상황 탓에 재건 협력은 논의할 엄두가 나지 않는 분위기지만, 키이우로의 인구 밀집 역시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이었다.

볼로셴코씨는 "재건 협력은 이미 시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프라 사업은 늦어선 안 되며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과 서둘러 협력 사업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주일간의 취재를 마친 24일 저녁 폴란드로 넘어가려고 탄 버스도 도심 내에선 교통체증을 피하지 못했다.

이따금 공습경보가 울리면 지하철로 대피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방공호로 대피하는 키이우 시민들 방공호로 대피하는 키이우 시민들

(키이우=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지난 24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공습경보가 울리자시민들이 지하철역으로 대피하고 있다. prayerahn@yna.co.kr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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