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결과 따라 한미약품 등 사업회사에도 영향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번 임시주총에서는 ▲이사회 정원을 기존 10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하기 위한 정관 변경의 건 ▲신동국 회장, 임주현 부회장을 신규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 ▲자본준비금 감액의 건 등이 다뤄진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도는 4 대 5로 형제 쪽에 기울어져 있다. 정관 변경안이 통과되고 추천 이사 2인이 선임되면 6대 5로 재편돼 3자 연합이 우세해진다.
다만 11명으로 2명을 늘리는 정관변경은 특별결의 안건이기 때문에 임시 주총에서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동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이 안건이 통과되지 않으면 3인 연합 측과 형제 측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이사 수는 5:5가 돼 갈등이 유지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향후 한미약품 등 주요 사업회사의 주요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최대주주로 41.4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내달 19일 개최 예정인 임시주총에서 ▲3자 연합 측 인사인 박재현 사내이사 해임의 건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 해임의 건 ▲박준석 한미헬스케어 대표(한미사이언스 부사장) 사내이사 선임의 건 ▲장영길 한미정밀화학 대표이사 사내이사 선임의 건을 다룬다.
박재현 대표이사는 30년간 한미약품그룹에 몸담은 인물이다. 제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다수의 개량신약 개발에 참여했고, 팔탄공장 공장장, 제조본부장 등을 지내며 의약품 연구개발, 품질관리, 생산총괄 등을 담당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박 대표와 형제의 사업전략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미약품이 최근 발표한 중장기 성장전략의 주요 골자는 자체 개발 제품을 통해 얻은 수익을 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더욱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로수젯, 아모잘탄패밀리, 비뇨패키지 등 개량·복합신약 제품들이 한미약품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경쟁력 있는 신제품을 지속 출시해 수익성을 유지하되, 비만 치료제, 항암제 등 차세대 혁신신약 개발에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이후 회사는 신약 매출 확대, 글로벌 사업 역량 강화 등을 통해 2033년 매출 5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반면 임종훈 대표는 인수합병(M&A), 투자, 오픈이노베이션 등 '외적 성장동력'을 중심으로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을 꾀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신약, 헬스케어, 위탁개발생산(CDMO) 등 계열사가 영위하는 사업 역량 강화를 통해 2028년 매출 2조3267억원, 그룹이익 1조원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8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반기 기준 한미사이언스의 현금성 자산은 24억원이 채 되지 않아 투자금을 내부 조달하긴 어렵다. 임 대표는 외부 투자 유치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지분 희석 등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현재 한미약품은 임 대표를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특별시경찰청에 고소한 상태다. 동시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함께 신청했다.
한미약품이 접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임종훈 대표는 임직원을 동원해 핵심 사업회사인 한미약품의 재무회계, 인사, 전산업무 등 경영활동의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별개 법인인 대표이사 업무 집행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수개월 전부터 이러한 업무방해 행위를 중단하고, 원상회복 및 업무 위탁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해 달라는 취지의 이메일과 내용증명을 수차례 발송한 바 있으나, 방해행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고소장에는 한미사이언스의 ▲무단 인사 발령 및 시스템 조작 ▲대표이사 권한 제한 및 강등 시도 ▲홍보 예산 집행 방해 등 여러 위력에 의한 위법행위 사실관계가 담겨져 있다.
3자연합 '백기사' 등판
현재 지분상으로는 3자 연합이 우세하다. 9월 말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 비중을 보면, 신 회장이 14.97%, 임 부회장, 송 회장이 각각 8.11%, 5.70%를 보유했고 우호 세력으로 꼽히는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 재단이 각각 5.02%, 3.07%를 보유했다. 3자 연합의 특수관계자 지분을 포함하면 이들은 총 44.97%를 가지고 있다.
형제 측은 임 사내이사 12.46%, 임 대표 9.39% 등으로 특수관계자 포함 총 25.62%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국민연금이 6.04%, 소액주주가 23.25%를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표심이 그룹 경영권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형제들은 송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꼽히는 가현문화재단 및 임성기재단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임종윤 사내이사는 지난 23일 본인이 최대 주주로 있는 코리그룹 한성준 대표를 앞세워 송 회장과 박재현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강남경찰서에 고발했고, 한미사이언스는 최근 "재단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고 확약이 있을 때까지 기부금 지급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
3자 연합은 우군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백기사로 떠오른 곳은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다. 라데팡스는 지난 18일 송 회장, 임 부회장, 가현문화재단 등으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지분 3.7%를 취득한 데 이어 26일 글로벌 헤지펀드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주식 95만주를 주당 3만5000원에 매입하며 1.39% 지분을 추가 취득했다. 이에 라데팡스 지분율은 5.09%로 올라섰고, 3자연합의 우호 지분율은 49.42%로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라데팡스가 이번에 매입한 물량이 임종훈 대표가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한 주식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앞서 임 대표는 상속세 마련과 주식담보대출 상환을 위해 지난 14일 보유 주식 105만주를 거래시간 마감 후 장외거래로 매각했다. 그 영향으로 임 대표의 지분은 9.27%에서 7.85%까지 낮아졌다.
다만 임 대표는 전날 종가(3만3900원)보다 약 12% 낮은 2만9900원에 지분을 매각했는데, 업계에서는 만약 임 대표가 라데팡스에 직접 지분을 매각했다면 더 큰 시세차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라데팡스의 주당 인수가격은 전일(25일) 종가(3만3900원)보다 3.24% 높다. 글로벌 헤지펀드는 중간에서 50억원가량 차익을 봤다. 일각에서는 임 대표의 지분을 적정 가격에 받아줄 백기사가 없었기 때문에 '블록딜'을 결정했을 거란 시각도 나온다.
임 대표는 라데팡스가 가족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 대표 측은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는 한진그룹, 아워홈 등 경영권 분쟁 상황에 있는 기업들을 타깃해 접근하고 있다. 일가의 화해를 도모하기보단 이를 부추겨 일방의 입장에서 매각주관사로 딜을 진행해왔다"며 "한미약품에서도 모녀와 형제 사이 갈증을 부추기며 조직적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사이언스는 라데팡스 김 대표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배임 및 횡령),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 상태다. 주요 고발 내용은 불필요한 임대차계약을 통한 자금 유출과 거래를 통한 회사 자금 유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이득 취득 등이다.
모녀 '빅파마' 경영체제 표방···의결권 자문사는 형제 측에 '손'
3자 연합은 정관변경 안건을 비롯한 신규 이사 선임이 임시주총에서 통과될 경우 전문경영인 선임을 위한 절차를 순조롭게 밟아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추진하는 '한국형 선진 경영 체제' 도입의 열쇠는 '전문경영인' 선임이다. 대주주는 이사회에서 한미를 지원하고, 전문경영인이 선두에서 한미를 이끌어 나가는 구조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3월 전문경영인인 박재현 대표이사를 선임해 지주사로부터의 독자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기업은 353년 역사를 가진 글로벌 제약사 머크다. 머크는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 등 두 개의 위원회를 운영하는데, 가족위원회는 머크 가문의 일원과 머크 사업 분야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로 혼합해 파트너위원회 구성원을 선출한다. 이렇게 선출된 파트너위원회에서 머크의 최고경영진이 선임된다.
선임된 전문경영인은 철저하게 독자 경영을 추진할 수 있고, 대주주들은 감독 기능을 한다. 1920년대부터 이미 머크 가문 일원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를 통해 회사의 철학과 비전을 실현한다.
하지만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는 3자연합이 제안한 정관변경 및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국내 기관인 서스틴베스트(Sustinvest)는 이사수를 11인으로 1인 늘리는 정관변경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전체 주주가 아닌 특정 주주를 위한 이사회 규모 변경은 반대 사유에 해당된다는 이유에서다. 서스틴베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번 정관변경 안건은 전체 주주 관점에서 주주가치 증대를 위한 것이기보다 특정 주주를 위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반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도 정관변경건과 신규이사 선임건을 모두 반대를 권고했다.
한미사이언스는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도 이사회 정원을 10명으로 두고 있다"며 "신동국 등의 정관변경 의도는 이사회를 통한 경영권 장악인데, 이것이 모든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형제 측 또한 전문경영인 영입을 통해 전문경영 체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주가치 제고 위원회, ESG위원회, 임원평가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핵심 거버넌스 기구를 신설해 이사회 중심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특히 형제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견제기능 강화를 위해 사내이사 중심의 이사회 구성 시도를 반대하는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선안도 시행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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