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KTV가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기역'(ㄱ)을 '기억'으로, '디귿'(ㄷ)을 '디읃'으로 방송 자막을 잘못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9일 제578돌 한글날 경축식을 방송할 때였다고 합니다. 중징계인 '관계자 징계'가 내려진 것으로 미뤄 위원들은 사안을 심각하게 봤던 모양입니다.
이번 기회에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며 자음을 소리 내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옷), ㅇ(이응), ㅈ(지읒), ㅊ(치읓), ㅋ(키읔), ㅌ(티읕), ㅍ(피읖), ㅎ(히읗).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이름들에 사용된 모음이 단모음 일색이건만 유독 '기역'의 'ㅕ'만 이중모음입니다. 또 두 번째 음절 초성이 모음 일색인데, 유일하게 ㄷ만 '디읃'이 아니라 '디귿'입니다. 이름을 익힐 때 유의할 지점입니다.
자음은 폐에서 나오는 공기가 입술이나 혀 등의 장애를 받아 만들어지는 소리입니다. 공기 흐름이 다양한 방해를 받으면서 발음된다는 점에서 방해 없이 발음되는 모음과 대비됩니다. '닿소리'라는 자음의 별칭은 다른 소리(모음)와 함께 쓰여야만, 즉 다른 소리에 닿아야만 발음될 수 있다는 의미로 자음의 속성을 잘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영어로 자음을 뜻하는 consonant를 뜯어보면 con(함께)과 sona(소리)로 나뉩니다. 같은 속성을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기역 자가 소재가 되어 떠오르는 속담이 있습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입니다. 기역 자 모양으로 생긴 낫을 보면서도 기역 자를 모른다는 뜻으로, 아주 무식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은 풀이합니다. 낫은 풀, 나무, 곡식 등을 벨 때 쓰는 ㄱ 자 모양의 농기구입니다. 평생 낫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말뜻이 얼마나 피부에 와닿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이라는 한자성어가 비슷한 맥락에서 쓰입니다. 고무래처럼 생긴 丁 자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를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무식하다는 것입니다. 고무래는 곡식을 그러모으고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거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모으는 데 쓰는 丁 자 모양의 기구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국립국어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1(체계 편), 2011
2. 유현경 한재영 김홍범 이정택 김성규 강현화 구본관 이병규 황화상 이진호, 한국어 표준 문법, 집문당, 2019
3.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동아시아, 2017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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