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익명게시판이 대통령하고 당 대표 욕하라고 만들어준거 아니에요? 그거 익명이라고 얘기했는데 저희가 어떤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서 익명성이 어느 정도 깨지게 된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죄송하게 생각해요. 오히려 그 부분을 저희가 개선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조금 일단이 드러났다, 그것도 명백하게 의도적인 소위 반한(反한동훈) 유튜버들이 그 시점에 그게 열리는 것을 어떻게 알며, 그렇게 만들어낸 걸 가지고 다들 부화뇌동한다? 당에 대한 자해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11.25 기자 질의응답에서)
△국민의힘이 때아닌 '당원 게시판 논란'으로 시끄럽다. 한동훈 대표와 그 가족 이름으로 된 국민의힘 홈페이지 ID로 당 익명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나 친윤계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갔다는 게 논란의 골자다. (익명게시판이지만 작성자명에 '한동훈' 또는 그 가족 이름을 넣어 검색해보니 검색이 됐다고 한다.) 이게 논란거리가 될 일인지는 차치하고, 한 대표의 대응도 사안을 키우고 있는 면이 분명 있다.
△"많은 당원들이 한동훈 대표가 '내 가족이 안 썼다'고 그냥 속시원히 한마디 해줬으면 바라는 분들이 많다"(윤상현 의원, 25일 YTN 라디오), "매사 똑부러진 한동훈 대표는 어디로 갔느냐. 그래서 가족이 썼다는 건가, 안 썼다는 건가"(김은혜 의원, 24일 페이스북) 등 자신을 겨냥한 공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한 대표는 '가족이 쓴 글이 아니다' 또는 '맞지만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등 명쾌한 해명을 못 하고 있다.
그러니 한 대표가 기자들과 15분간 격정적인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익명 당원게시판은 당이 익명으로 글을 쓰라고 열어준 공간이고 당연히 거기서는 대통령이든 당 대표든 강도 높게 비판할 수 있는 것", "'대통령 비판한 글 누가 썼는지 밝히라, 색출해라'라고 하는 건 자유민주주의 정당에서 할 수 없는 발상이고 그 자체가 황당한 소리", "대부분 언론기사, 사설 등 내용이고 도를 넘지 않는 정치적 표현으로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보인다", "저 정도 글을 못 쓴단 말이냐. 왕조시대냐", "당의 익명게시판이 대통령하고 당 대표 욕하라고 만들어준거 아니냐"는 등 '맞는 말'을 해봤자 별반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한 대표의 '15분 작심 토로'를 놓고 정치권, 당 안팎에서는 '그래서 가족이 썼다는 거냐 아니냐', '사실상 썼다는 자백'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제법 나오고 있다. 특히나 '당 대표 가족이 대통령을 원색 비난했다면 도의적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시스템 오류로 (당원게시판의) 익명성이 깨지게 된 부분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그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는 적반하장에 가깝다는 지적까지 있다. 가족의 부적절한 내지 논란성 처신에 대해 당원들에게 사과하랬더니 오히려 사과를 본인 가족에게 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또 "문제없는 게시글을 누가 게시했는지 밝혀라? 저는 그런 요구에 응해주는 것이 공당으로서 기본 원칙을 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익명게시판에서 마음에 안 드는 글, 문제되는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이 누군지 밝히고 색출해라? 저는 그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고도 했다. 문제제기의 의도가 "어떻게든 당 대표인 저를 흔들겠다는 것", "이재명 대표 선고 나고 조금 숨통 트이는 거 같으니까 이제 당대표를 흔들고 끌어내려보겠다는 얘기"라고도 했다.
△당원게시판 논란을 대하는 한동훈 대표의 이같은 태도는 낯설지 않다. '김건희 리스크'를 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여권 내에서 김건희 리스크 문제를 가장 앞장서서 지적해온 이가 한 대표임을 생각하면 잔인한 아이러니다. 아니, 그가 가족 관련 이번 논란에 발목이 잡힌 것이 과연 우연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지난 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리스크 문제에 대해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으나, 막상 구체적 질의응답에서는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도 치르고 대통령을 도와야 되는 입장", "예를 들어 '요새 회의 때 막 참모들한테 막 야단을 많이 친다는 말이 있는데 당신 좀 부드럽게 해' 그런 걸 국정 관여라고 할 수는 없다", "과거 육영수 여사께서도 청와대 내 야당 노릇을 했다고 하시는데 그런 대통령에 대한 아내로서의 조언을 국정농단화(化)시키는 것은 우리 정치 문화상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 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될 것"이라거나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은 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영부인이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 등 정치권 안팎 인물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제가 제 아내 휴대폰을 좀 보자고 할 수는 없는 거라 제가 그냥 물어봤다. 이런 논란들이 있기 때문에"라며 "한 몇 차례 정도 문자나 이런 걸 했다고는 얘기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가족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휴대폰 좀 보자'는 말을 하면 왜 안 되는 건지, 유권자·지지자들 앞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원칙', '국어사전'을 운운하며 본인의 관점을 설파할 일인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악마화'하거나 '흔들려'고 한다는 식의 역공이 적절한지 의문이 드는 것은 두 사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찝찝한 점이다. 지금은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지만,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신뢰하는 상사-부하 관계를 이어왔다던 두 사람은 역시 통하는 면이 있기는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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