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상법 개정안 논의가 26일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극명해 접점을 이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후 투명한 자본시장을 만들겠다며 당내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TF’를 설치, 상법 개정에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입장을 선회했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 등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경영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고, 기업들이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소송에 휘말릴 여지가 높다며 반발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 이사의 '충실의무'와 '보호의무' 규정 명문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6일 오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법안소위에 회부된 대표적 상법 개정안은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인 이정문 의원이 대표발의안 개정안으로서 당론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주주들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와 '보호의무' 규정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회사 이사의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해 일반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개정안은 이사회 구성의 다양화,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 선임과정에서 집중투표제 도입, 분리선출 되는 감사위원인 이사의 수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에 대해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고, 직무 수행시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외의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이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독립이사로 하도록 했다. 또 전자주주총회의 개최도 가능하게 했다.
이재명 “상법개정 반대는 우량주를 불량주로 만들겠다는 것”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6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민생연석회의 출범식 모두발언을 통해 “상법을 개정하지 않는 것은 소위 (기업) 우량주를 불량주로 만들어도 괜찮다는 것 아니냐”라며 “정부의 태도가 돌변해 반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지금 법으로는 물적 분할이나 합병으로 알맹이만 쏙 빼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정부가 태도를 바꿔서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데 이런 주식 시장에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밝혔다.
이날 이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 경제가 얼마나 어렵나. 최근에 기업인을 많이 만나는데, 희한하게 다들 내놓고 말은 못 한다. 하지만 비공개로 말할 땐 (기업인들의) 위기의식이 정말로 심각하다”며 “지금 주식시장이 많이 안 좋다. 다른 나라의 주식시장은 상승 국면인데 대한민국의 주식 시장만 계속 하강 국면인 것은 경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은 전적으로 정부의 무능과 무관심, 무지 때문이다. 정부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정책의 부재, 산업 정책의 부재가 주식시장과 기업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경제와 국장 살리기를 위한, 상법개정 끝장토론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와 함께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6일 TF 출범식에서 “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입법과 증시 선진화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 증시를 정상화, 활성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려고 한다”며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우리 주식시장이 부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상법개정안의 부정적 영향 살펴야”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혼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상법 개정 입장을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월26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자본시장 선진화를 중점 과제로 삼아 상법 개정 추진과 추가적인 방안도 다각도로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난 6월 상법 개정 관련 브리핑을 열고 관련 간담회에도 참석해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 내 개정 공론화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은 지난 9월 ‘부처 간 논의 중’이라며 노선 변경이 감지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처음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KBS 일요진단에서 “이사가 지금은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다하게 돼 있는데 주주까지 포함하면 의사결정이 굉장히 지연될 수 있다”면서 “기업 지배구조가 좀 더 투명하게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이 상법 개정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 경영이나 자본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소송도 많이 일어날 거라는 걱정이 있고, 이를 빌미로 외국의 투기자본들이 기업에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생기면 기업가치에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투기자본들이 들어왔다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빼먹고 나가는 과정에서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자본시장 측면에서도 상법 개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면만 있느냐, 부작용이 더 크지 않느냐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합병, 분할 부분에서 문제가 제기됐던 부분에 대해서는 “제도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며 이를 통해 “상법 개정의 부작용을 피해가면서 실효적 지배구조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위원장은 합병은 합병비율을 기준주가로 산정하던 부분을 폐지하고,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고정한 합병가액을 정하고 외부 평가를 받고, 공시하도록 하고 분할의 경우 우량한 부분을 자회사로 분할해서 상장시키면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만큼, 자회사를 상장할 때 기존 주주에 대해 자회사 주식을 우선 일정 부분 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연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만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을 맡은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의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비공개 당정을 통해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로 구성된 시·도지사협의회(회장 유정복)도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 기업의 경영위기를 초래할 '상법 개정안' 입법 자제를 야당에 촉구했다.
협의회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지난 19일 야당은 재계가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최종 확정해 발의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재계는 한목소리로 국회에 입법 중단을 간곡히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상법개정안’은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메가톤급 입법”이라며 “이번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많은 기업이 기업사냥꾼의 제물이 되고, 투기자본의 먹튀 공격에 노출되며, 기업은 소송 남발로 정상적인 기업경영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의회에는 “기업의 경영위기를 초래할 '상법 개정안' 입법을 자제할 것을 야당에 정중히 요청한다”면서 “이번 상법개정안이 우리 경제를 흔들고,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개정 내용’을 담고 있어, 이를 배제하지 않고서는 '상법타협 가능' 대안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민경제에 미칠 수 있는 이번 ‘상법 개정안’의 위험성을 민생 현장 행보 강화로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시길 바란다”면서 “한동훈 대표는 최근 당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을 신속히 수렴해 단합된 모습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당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재계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 우려
정부 입장이 선회한 결정적 이유는 재계의 반발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확대될 경우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8단체 및 주요기업 사장단은 각각 지난 14일과 21일 입장문을 통해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조장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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