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달앱 상생안, '제때' 아니라 '제대로' 했어야

[데스크칼럼] 배달앱 상생안, '제때' 아니라 '제대로' 했어야

머니S 2024-11-25 17:02:08 신고

황정원 산업2부 유통팀 차장. /사진=김은옥 황정원 산업2부 유통팀 차장. /사진=김은옥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을 많이 사면 살수록 더 비싸게 사야 한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상생협)가 내놓은 최종 상생안을 두고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가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이다. 배달의민족이 제시하고 상생협이 합의한 최종안에 따르면 배달수수료는 거래 규모가 큰 업체일수록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거래액 기준 ▲상위 35% 중개수수료 7.8%에 배달비 2400~3400원 ▲중위 35~50% 중개수수료 6.8%에 배달비 2100~3100원 ▲중위 50~80% 중개수수료 6.8%에 배달비 1900~2900원 ▲하위 20% 중개수수료 2.0%에 배달비 1900~2900원을 부과하는 식이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 말대로 거래액이 클수록 플랫폼에 지불해야 할 수수료는 더 높아진다.

지난 7월 출범한 상생협은 12차 110일에 걸친 회의 끝에 지난 14일 최종 합의에 이르렀지만 '반쪽짜리' '졸속합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점업체 4곳 중 상생안과 가장 이해관계가 깊은 전국가맹점주협의회와 한국외식산업협회가 투표를 거부하며 회의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끝까지 남아 찬성표를 던진 2곳은 상생안에서 '제로' 수수료가 적용되는 전국상인연합회와 배달앱 수수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소상공인연합회다. 소공연에는 이용업계, 보일러수리협회 등 음식배달과 관련이 없는 곳들도 두루 포함되어 있다.

현장을 지켰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익위원들마저 투표권을 이정희 위원장에 넘기고 자리를 비웠다. 한 관계자는 "전가협과 외식협의 격렬한 반대 속에 최종안이 날치기 통과될 조짐이 보이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리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가맹점주들과 외식업주들은 최종안 발표 직후 커뮤니티와 단체톡방 등에서 자체적으로 설문을 실시해 1576명의 참여자 가운데 85.1%가 최종안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플랫폼사에 유리한 차등수수료율

배달플랫폼들이 내놓은 최종안은 얼핏 보기에는 상생을 위해 한발짝 물러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이 많다.

첫째, 배민과 쿠팡이츠가 제시한 차등수수료는 상위 수수료를 적용받는 업주 입장에서는 현행과 비슷하거나 되려 오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거래액 상위 35%에 해당하는 업체는 1만원 주문이 들어왔다고 가정했을 때 현행대로라면 수수료+배달비가 1960원+2900원=4860원이다. 최종 상생안으로 계산하면 1560원+3400원=4960원으로 오히려 100원이 인상된다.

둘째, 차등수수료 적용 기준이 상생과 거리가 멀다. 플랫폼사가 내 건 기준은 자사 거래규모다.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의 상생협이니 단순히 생각하면 이게 맞는 것처럼 보인다.

업주들의 입장은 다르다. 상생협의 취지가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배달앱 의존도'를 기준으로 삼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같은 월 1000만원이라 하더라도 배달전문이라 1000만원에 대한 수수료를 오롯이 내주어야하는 A업체와 내방고객 80%에 배달이 20%인 B업체가 지불해야하는 수수료 부담은 다를 수밖에 없다.

셋째, 차등수수료 구간에 대한 검증절차가 논의되지 않았다. 배달플랫폼사들은 자사의 거래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사들이 거래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데 최고 수수료율을 상위 35%에게만 적용할지, 50%까지 적용할지 누가 알겠나"라며 "수수료율도 플랫폼사 기준, 거래규모도 플랫폼사 기준, 모든 것이 플랫폼사 기준이다"라고 비판했다.

상생협은 이토록 허점이 많은 상생안을 왜 통과시켰을까. 일각에서는 마감 시한에 대한 의무감을 꼽는다. 상생협이 당초 정부가 약속한 100일을 넘기면서 12차, 110일에 걸쳐 회의가 진행되다 보니 정부 측과 공익위원들이 적잖은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원한 것은 '제때'가 아닌 '제대로' 된 합의였다. 장기화된 협의에 여론이 피로감을 호소한다 할지라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어야 했다.

지금의 상생안은 최종 내용, 의결 과정, 업주들의 지지, 검증 시스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반쪽짜리'가 아니라 반의반쪽에도 못 미치는 결과물이다. 우리 조카가 초등학교에서 숙제를 제때 냈지만 제대로 못 했을 때 선생님께 들었던 말씀을 상생협에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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