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우정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수주를 놓고 경쟁을 벌여온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호주 호위함 수주전에서 탈락한 양사는 경쟁국들처럼 정부와 ‘원팀’을 이뤄 방산분야의 우위를 재확보할 계획이다. 그러나 핵심 갈등요소인 KDDX 수주업체 선정을 둘러싼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22일 한화오션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방문해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고발한데 대한 취소장을 제출했다. 이는 지난 3월 법적분쟁을 시작한지 8개월 만으로, 양측의 고소·고발로 제자리걸음을 하던 KDDX 사업도 다시 활기를 띌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세계가 한국 조선업을 주목하는 가운데 고발 취소를 통해 상호 보완과 협력의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며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의 적기 전력화로 해양 안보를 확보하고 해양 방산 수출 확대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고발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은 “자사가 공정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라며 “한화오션이 고발을 취소한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회답했다.
양사의 고소·고발전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직원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부터 시작됐다.
경쟁업체인 한화오션은 해당 판결을 토대로 “HD현대는 KDDX 입찰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2월 말 방위사업청은 “청렴 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HD현대중공업의 KDDX 사업 입찰 자격을 유지했다.
이에 한화오션은 올해 3월 KDDX자료 불법 유출사건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한 고발장을 경찰청에 제출했고,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에 맞서 HD현대중공업은 기자회견 당시 공개된 수사기록을 근거로 한화오션을 허위사실 적시 등의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방산 호황’에 양사 간 갈등이 수주전에 걸림돌이 되자 한화오션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 조선업계에 협력을 요청한데 이어 지난 8일 최대 110억달러(약 10조587억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수주전에 양사 모두 탈락한 점이 결정적인 계기로 파악된다. 방산업계는 양사의 소송 리스크와 이에 따른 정부와의 불협화음을 주요 탈락 원인으로 지목했다.
호주는 ‘SEA 3000’ 호위함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10년간 현재 운용 중인 안작(Anzac)급 8척을 11척의 신형 호위함로 대체할 계획이다. 당시 사업 입찰 후보로 지목된 국내 모델은 HD현대중공업의 충남급 FFX 배치 Ⅲ와 한화오션의 대구급 FFX 배치 Ⅱ이다.
호주는 최총 후보(쇼트리스트)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모가미(Mogami) 30FFM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의 메코(MEKO) A-200을 선정했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독일의 메코 A-200은 호주 해군의 안작 호위함의 현대판으로, 현지 요구사항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모듈식 설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모가미 30FFM은 최첨단 기술과 기능을 갖춘 모델인 동시에 양국이 군사·방위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지난 4월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호주, 영국, 미국의 국방·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의 첨단 방위 기술 분야 협력을 검토한 바 있다.
유안 그레이엄 호주 전략정책연구소의 수석애널리스트는 “독일이 사용하는 무기 시스템은 미국과 나토(NATO) 표준에 부합하기 때문에 호주가 통합하기 더 쉬울 것”이라면서도 “다른 모든 요인이 동일하다면 지정학적 맥락이 추가적인 가중치를 더할 것이다. 입찰에 참여한 모든 국가 중 일본이 호주 정부와 가장 긴밀한 국방·안보관계를 맺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경쟁국인 일본과 독일 조선업체는 각국 정부와 ‘원팀’으로 호주 군당국과 접촉해 사업 참여의지를 드러냈지만, 한국은 갈등 관계의 양사가 모두 참여한 탓에 정부와 협력하지 못한 것이 최총 후보에 등록되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미쓰비시가 대표로 참여하고 일감은 미쓰비시와 가와사키가 나누는 구조로 입찰에 참여했다. 독일 또한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으로 일원화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대규모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신 한화오션과 HD현대는 현재 입찰을 진행 중인 폴란드, 필리핀,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은 정부와 ‘K-방산 원팀’을 구성해 입찰에 나설 계획이다.
캐나다 정부 잠수함 프로젝트는 캐나다 정부가 3000T급 디젤 잠수함을 최대 12척 구매하는 사업으로, 예산은 70조원, 건조금액은 20조원에 달한다. 폴란드는 3조원, 필리핀은 2조원 규모의 사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K-방산 원팀’의 본격 활동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7조8000억원 규모의 KDDX 방산업체 입찰에서 양사 간 신경전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KDDX 사업을 나눠 수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기본설계를 한 만큼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수의계약 형태로 수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이 많이 지연된 만큼 한화오션의 방산업체 지정 신청도 철회돼 KDDX 사업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히 진행되길 희망한다”며 “K-방산 경쟁력 강화, 수출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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