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년이' 속 여성국극 황태자 역…"정년이의 키다리 아저씨죠"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드라마 '정년이'에는 남자 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도, 라이벌도, 로맨스의 대상도, 심지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자님'도 여자다.
'정년이' 속 명실상부한 여성국극계 황태자, 문옥경 역을 맡은 정은채(38)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 중 문옥경은 195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매란국극단에서 남자 주인공 역을 도맡으며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 국극 배우다.
정은채는 문옥경에 대해 "대본에는 매란국극단의 얼굴이자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라고 나온다"며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정년이란 원석을 알아보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길잡이, 키다리 아저씨 같은 따뜻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역을 맡으면서 정은채는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언뜻 보면 남자로도 착각할 정도로 멋진 '왕자님'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 '쇼트커트'(짧은 머리)를 한 적이 없다. 외적으로는 굉장히 큰 변화"라면서도 "원작 속 옥경이의 이미지가 있고, 캐릭터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외형적 변화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각이 딱 떨어지는 남성복을 멋있게 소화하기 위해 운동도 조금 했다"며 "다만, 여자가 남자를 연기할 때 주로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보다는 좀 더 힘을 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문옥경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간 정은채가 보여준 드라마 '안나'에서의 철없는 부잣집 딸, '파친코'에서의 참한 손윗동서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누구보다 멋진 여성국극의 남자 주인공으로 태어났다.
정은채는 "문옥경이란 인물이 너무나 신선했다. 제가 지금까지 (제안) 받아보지 못했던 캐릭터였다"며 "큰 도전이겠지만 제 배우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구나 싶었다"고 돌아봤다.
문옥경이 상대역인 서혜랑(김윤혜)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인 "잘 있어, 공주님"이란 대사에 대해서는 "사실 김윤혜 배우와 만나고, 연습하는 장면들이 대부분 (극중극인) 국극 장면이었다"며 "서로가 왕자와 공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대사를 하면서도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대사 직전에 김윤혜와의 키스 장면은 촬영했지만 편집됐다고 한다.
여자 배우와 제작진이 가득한 현장은 그에게 마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경험해 본 현장 가운데 가장 여자가 많았다"며 "제작진도, 배우도 여성이고 여성 스태프도 많았다. 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화기애애하고 떠들썩한 가운데 잘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학교에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가 언제까지나 모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때의 저를 잘 포착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면 좋겠네요. 발랄하고 귀엽고 따뜻한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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