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영향력 확대 경쟁에 '반사이익' 전망…'미 우선주의' 불똥 가능성도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대선 승리에 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동남아시아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한동안 반사 이익을 봤던 동남아 국가들은 또 한 번 수혜를 바라는 분위기다.
역사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실리를 추구했다. '을'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과 적이 되지 않으려는 생존 전략이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의 '구애' 경쟁이 일어날 수 있고, 동남아 국가의 '몸값'이 상승할 수 있는 구도다.
트럼프 당선인이 더욱 강력한 중국 견제에 나서면 두 나라의 패권 다툼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수록 중립적인 동남아 국가에 대한 영향력 확대 경쟁도 가열될 수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충돌 중인 필리핀을 제외하면 최근 동남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친중' 행보를 보였다.
동남아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중국과 달리 이 지역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미국 영향력은 축소됐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던 버락 오바마 정부와 달리 트럼프 당선인은 이전 재임 기간 동남아를 경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동남아 국가들이 포함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아세안 정상회의에도 연이어 불참했다.
하지만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등을 놓고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미국도 동남아에서 '우군'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지정학적 변화를 고려하면 트럼프 2기에서는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동남아 지역전문가 카위 총키타완은 타이PBS 기고에서 "과거 트럼프는 주로 경제 관점에서 동남아를 바라봤지만, 지난 수년간 지정학적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남아가 트럼프 2기에 특히 기대하는 것은 경제적 과실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해 다시 무역전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1기에서는 기업들의 '탈중국' 현상이 벌어지면서 동남아 신흥경제국들이 특수를 누렸다.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으로 중국에 있던 생산 시설이 대거 이전하고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다.
미국, 중국과 각각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동남아 국가들은 '안전한 투자처'라는 점을 강조하며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피차이 나립타판 태국 상무부 장관은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트럼프의 승리는 태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면서 양국이 태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다시 본격화할 조짐을 보인다.
태국 한 산업단지 관계자는 "트럼프 1기에 동남아로의 생산 기지 이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더욱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재집권을 둘러싼 위험 요소도 분명히 존재한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글로벌 경제가 흔들리면 동남아 신흥국도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 경제가 침체하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들에 불리하다.
또한 미중 갈등이 폭발해 남중국해 등에서 실제 분쟁이 생기면 동남아는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대나무 외교'를 펼치던 동남아 국가들이 미중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수도 있다.
관세 문제도 긍정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중국 기업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하는 동남아 국가에도 관세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동남아 국가에 대한 무역 적자를 줄이려고 압박할 수도 있다.
과거 트럼프 집권 이후 본격화된 무역 전쟁으로 태국의 대(對)미국 전자제품 수출은 7배로 늘었다. 타이어와 철강 수출도 2배로 증가했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승리로 관세 인상 우려가 커진 국가가 중국만은 아니다"라며 "트럼프 행정부 이후 대중 적자는 다소 감소했지만 다른 아시아 수출국에 대한 무역 적자는 많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한 태국 매체는 트럼프 복귀 관련 칼럼에서 '안전띠를 매라'를 제목을 달았다. 고속 질주에는 사고 위험도 따르기 마련이다.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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