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저녁, 동덕여대가 학생들과 소통 없이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논의했다고 알려지며 학내 시위가 촉발됐다. 사건을 두고 일부 미디어는 젠더갈등을 덧씌웠고, 정치인들은 ‘이때다 싶은’ 혐오 발언으로 사태를 성 대결 구도를 부추겼다. 심지어 학교 측이 시위로 인한 피해 금액을 최대 54억 원이라고 밝힌 뒤 숫자를 앞세우며 ‘과격 시위’만을 부각하는 비난조의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학교 본관을 점거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 나갔다. 공학 전환 안건에 대해서는 총회 출석 학생들 1973명 중 1971명이 반대했으나, 학교측은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21일 시위가 잠시 중단되고 학교는 다만 향후 계획과 방침 등을 담은 입장문을 오는 25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자대학이 사라진 역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동덕여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일부 여대에서 단과대나 유학생 일부의 공학 전환을 ‘몰래’ 검토했다는 사실이 연쇄적으로 ‘드러났다.’ 지난 15일 성신여대에서는 학생들이 국제학부 남자 신입생 입학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일부 남학생들은 이미 편입으로 입학한 사실도 알려졌다. 광주여대 역시 최근 변경된 입학 모집 요강에 '유학생과 성인학습자에 한하여 남학생을 받는다'는 조항이 추가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연대 시위를 이어갔다. 서울여대 학생들도 시위에 나섰다. 사안은 성추행 의혹을 받는 교수에 대한 추가 징계를 요청한 것. 빨간 래커로 캠퍼스 건물 외벽에 항의 메시지를 칠하며 ‘학교는 학생의 분노를 들어라’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해당 교수는 감봉 3개월 징계 뒤에도 수업을 계속했고 학생들이 나서서 강하게 비판하자 문제의 교수는 사직했다.
시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왜 여대를 화나게 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1. 시위의 본질은 불통과 비민주성
미디어가 앞다투어 보도한 빨간 래커와 동상에 계란을 던진 건 시위의 본질이 아니다. 시위 당사자인 여대 학생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본질을 봐야 한다. 학교의 비민주적 행정에 문제를 삼으며 시작된 것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전에도 학교 측이 사전 논의 없이 결정을 강행한 사례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여대 시위의 공통된 외침은 '일방적 남성 입학 허가를 폐지하고, 재학생 목소리부터 들어달라'는 것이다. 남녀공학 전환은 학생들과 논의를 거쳐 시간을 두고 이루어져야 하는 결정임이 분명하다. 학생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시위 중 수차례 대학 측에 설명을 요구하고 대화를 요청했으나, 학교 처장단과 총학생회장단 면담 자리에 학교 측은 불참했다. 일부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문제 등 공학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내세우지만 졸속 전환이 반드시 묘안이 아닐 수 있다.
2. 안전한 여자대학이란?
다수의 여대생들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안전한 공간인 대학 환경을 지켜달라는 것을 공학 전환 반대의 이유로 든다. 성기를 노출한 채 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제 물리적인 위협을 하는 등 그동안 외부인 남성에 의해 여대가 '침범'당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미투운동 촉발 후에도 대학 교수와 학생 사이의 성폭력과 성추행 고발 역시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남성중심적 대학 문화에 반발한 공학 대학의 여학생들이 시위에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를 냈다는 데에서 이같은 발언의 타당성은 더욱 커진다. 실제 이번 시위 이후에도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반여성주의 단체의 집회, 학내 외부인 무단 침입 등 과잉 격화되는 모습마저 보였다. 여대는 동일 집단의 장소와 동시에 언제든 '침범'될 수 있는 수동적이고 취약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3. 여대생=페미라는 오해
‘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여대생들에게 ‘과격한 페미(니스트)’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사이버 상에서는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페미니스트가 문제다”는 온라인 게시글과 유튜브 콘텐츠가 올라왔다. 사회, 특히 남자들이 여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대는 성애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판타지에 응하지 않는 여대생은 남혐(남성혐오)를 일삼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로 오인 받곤 한다. 최근 출간된 이민주 작가의 책 〈페미사냥〉에서는 “페미사냥이 일어나고 있다. 2024년, ‘페미니즘’은 누구든 그 죄목으로 옭아매 처벌할 수 있는 이름이다.”라고 지적한대로 페미니즘 검증은 어떤 사안이든 필요한 논의를 지우고 축소한다. 과거 안산 선수가 여대에 다닌다는 이유로 페미라고 ‘확신’한 사건이나 집게 손가락이 남혐의 근거가 되는 음모론의 맥락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 반발과 반대 감정으로 인한 혐오 행동)가 되풀이되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성평등이 소원하다는 현실을 방증하는 듯하다.
4. 앞으로의 여대는 어디로
여대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학생 유치에 실패하는 이유를 돌아보아야 한다. 학생들이 내건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역사적으로 여대는 여성이 교육면에서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회적 소수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했음을 짚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대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교육 기회 확대, 성차별 완화 등 공적 가치에 이바지해온 목적성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는 점검해 볼 문제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여대는 평등과 다양성의 가치에 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생물학적 여성만을 여성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거나, 여성의 광의적 범위와 페미니스트의 이상향을 재정의해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거부 사건은 다시 이야기되어야 한다.) 뼈아플지라도 현실을 직시해야 앞으로의 여대가, 한국 대학이 나아갈 방향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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