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으로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협력을 강조함에 따라,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현지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국방력 강화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MRO(유지·보수·정비), 군함 건조, 고부가가치 LNG 운반선 시장 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조선업은 한때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 특히 한국·일본·중국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쇠퇴했다. 특히 미국은 군함 유지와 보수 능력이 부족해 새로운 군함을 건조하기보다 기존 함정이 퇴역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중국이 해군력을 강화하며 바다에서의 영향력을 넓히는 가운데, 미 해군은 자국 내 조선업이 쇠퇴해 증대되는 중국 해군력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조선업 재건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방인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보유한 한국 조선업계는 MRO뿐만 아니라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도 글로벌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국내 대표 해양 방산 기업인 한화오션과 HD현대에게 미국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기업은 폴란드 잠수함 사업 수주 과정에서 과열 경쟁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각 분야의 장점을 살려 협력한다면 미국 내 시장의 입지를 단단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한화오션은 잠수함 분야에 강점이 있으며 HD현대는 군함 분야에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와 관련 한화오션은 이미 미국 현지 사업 강화를 위해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 지분 100%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정부의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인 이 인수는 미 해군 함정의 정비와 보수를 현지에서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화오션은 인수 완료 후, 추가 투자와 시설 현대화를 통해 필리조선소의 역량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미 해군과의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도 미국 해군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MRO 시장 진출하고 있다. 2024년 7월,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해 향후 5년간 미 해군 함정 MRO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했다. 도크의 높은 가동률로 인해 올해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내년부터 작업 일정을 조정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회사는 기술 개발과 내부 프로세스 최적화에 집중하며 미 해군 MRO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군함 MRO 시장은 2023년 약 577억6000만달러(한화 약 81조원)에서 2029년 약 636억2000만달러(한화 약 89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미국 함정 MRO 시장만 약 20조원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MRO 시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군 군함 건조 계약을 수주하려면 미국 존스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의 ‘존스법’은 1920년 제정된 법으로, 자국 항구 간 운항하는 선박은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의 문근식 교수는 “존스법에는 미국 내에서 선박을 건조, 등록, 운영, 수리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이나 일본에 미 해군의 MRO 사업을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 증가하는 MRO 사업을 계기로 한국 조선업의 신뢰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군함 건조까지도 가능하도록 기업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미국 MRO 시장 선점을 넘어 군함 건조 계약 수주를 위해서도 노력하는 분위기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필리 조선소 미국 정부 승인 절차는 올해 안으로 완료될 예정”이라며 “필리조선소는 현재 일반 상선을 건조하고 있지만 인수 후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MRO 외에도 해군 군함 건조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LNG 수출 재개를 추진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LNG 운반선 수요를 크게 증가시킬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운반선은 영하 163도의 초저온에서 액화된 천연가스를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설계됐다. 1척당 가격만 약 3400~3500억원에 이르며, 정교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한화오션은 차세대 연료탱크와 무탄소 연료 기술, HD현대중공업은 LNG 냉열 활용 기술,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과 FLNG 분야 글로벌 선두 등 강점을 보유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LNG 운반선의 핵심은 영하 163도의 극저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액화천연가스를 보관할 수 있는 화물 탱크 기술이다. LNG는 온도 변화에 민감해 폭발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정밀한 설계와 안전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내부와 외부 온도 차가 최대 190도에 이르는 여름철 환경에서도 탱크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화물 탱크는 직사각형 구조의 ‘멤브레인형’과 구형 구조의 ‘모스형’으로 나뉘며, 한국 조선사들은 적재 효율이 약 40% 높은 ‘멤브레인형’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LNG 운반선을 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9개국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한국과 중국이 대부분의 수주 물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실상 두 나라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첨단 기술력과 대규모 생산 능력이 필수적인 이 시장에서 한국은 특히 높은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일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간한 ‘해운·조선업 3분기 동향 및 2025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LNG 운반선 수주 점유율은 올해 1∼3분기 60%대 정도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도 트럼프 정부가 LNG 확대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발주량 감소세로 전망됐던 운반선 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LNG 운반선의 발주량이 많았기 때문에 발주량이 한동안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 중시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발주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한국 조선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