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 우리는 ‘유한양행’을 아주 좋은 회사로 기억한다. 그동안 세운 기업 성과가 컸지만, 창업자 고 유일한 회장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며 유한양행을 설립하는 한편 몸소 독립운동까지 했다.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했고,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가 하면, 특히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한 CEO였다는 점이 감동 포인트다. 내후년이면 창업 100년인 유한양행의 경영을 맡은 지금의 전문경영인은 누구일까. 어느 CEO 자리인들 쉬울까마는 유한양행의 CEO에게는 특히 남다른 사명감이 요구될 거 같다. 유한양행의 CEO 조욱제 대표이사를 탐구해 보자.
유일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유한양행은 기업들에 귀감 될만한 사례를 많이 갖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투명경영을 위해 유한양행의 주식을 1962년 우리나라 최초로 공개한다. 이때 임직원들이 극구 만류했는데, 소유 재산을 재평가해 주가를 끌어올리자고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아무도 유일한 회장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유일한 회장은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육사업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은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유한공고를 비롯해 유한대학 등 여러 학교를 설립하여 모든 학생에게 학비와 숙식비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가 ‘Educator’라 쓴 명함을 즐겨 사용했다는 일화를 보면 교육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유한양행의 강점 중 특히 주목되는 건 세금 납부이다. 한번은 국세청이 너무 많은 세금을 자진 납부는 걸 보고 되레 이상하게 여기고 고강도 세무 감찰을 했다. 더 많이 내야 하는데 축소한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 거다. 하지만 결과는 단돈 1원도 부정 지출이 없었다.
유일한 창업자는 이런 유언장을 남겨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손녀에겐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 1만 달러, 딸에겐 유한공고 안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주고, 아들은 대학까지 시켰으니 자립하라고 했다. 또 모든 주식을 ‘한국 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에 기증하라고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유일한 창업자의 삶과 경영철학에 무슨 토를 달겠는가. 그저 존경심을 보낼 뿐이다.
‘ESG 가치’ 실현 위해 앞장서는 CEO
이런 유한양행이기에 이 회사를 이끄는 CEO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을 기대할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 유한양행의 CEO는 조욱제 대표이사다.
조욱제 대표는 2021년에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래 올해 다시 선임돼 연임하고 있는 CEO이다.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한양행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잔뼈가 굵은 ‘유한맨’ 조 대표는 꼼꼼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통한다.
조 대표는 유일한 창업자가 남긴 경영 정신을 늘 가슴에 새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금과옥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선포한 ‘유한 ESG 경영 실천 공동선언’만 해도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진행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후 위기가 글로벌 과제가 된 상황에서 환경경영 및 기후 위기 대응, 윤리경영 및 인권 경영 강화, 동반성장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ESG 가치’ 실현을 위해 기업이 앞장서는 건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
조 대표가 추진하는 유한양행의 올해 화두는 ‘Great & Global’이다. 나눔과 공유로 사회와 함께하는 ‘위대한 기업’과 인류 건강과 행복에 이바지하는 ‘글로벌 기업’을 위해 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투명·공정·윤리’의 실천 아래 창립 100주년을 맞는 2026년에 ‘글로벌 50대 제약사’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제2, 제3 렉라자 개발에 적극 나선다
조욱제 대표는 지난 8월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따내며 ‘최초의 국산 항암제’ 타이틀을 거머쥔 폐암 치료제 ‘렉라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조 대표는 이 성과를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유한양행 R&D 투자의 유의미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연구, 개발, 상업화에 이르는 기술혁신을 위해 대학, 타 기업, 연구소 등 외부 기관과 협력하는 방법을 말한다.
사실 렉라자 개발의 출발은 2015년 당시 이정희 대표이사(현 이사회 의장)가 미국에서 열린 JPM 콘퍼런스에 참여했다가 쉬는 시간에 우연히 ‘레이저티닙이라는 비임상 직전 단계의 항암 신약 물질이 향후 상업화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을 듣는다.
이때 여럿이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콜럼버스처럼 달걀을 세운 기업은 유한양행이었다. 이정희 의장은 국내외 기업과 학교, 연구기관 등을 규합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렉라자는 2021년 우리나라 식품이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는다. 그러고 올해 미국 FDA의 문턱을 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렉라자의 쾌거는 단순한 개발 성공이란 상징에 머무르지 않는다. 함께 개발에 참여했던 얀센으로부터 6천만 달러(약 800억 원) 규모의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받으므로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일찍 출근해 퇴근하고 싶지 않은 회사 지향
조욱제 대표는 늘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유한양행은 정말 훌륭한 회사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기업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혹시 유한양행의 CEO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이는 유한양행에 대해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 평가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다. 워낙 이직률이 없는 회사이다 보니 입사 순서에 따른 선후배 관계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수직적 문화가 그것이다. 그래서 조 대표는 ‘오픈 마인드’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사람이든 제품이든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조 대표는 자문단까지 구성해 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누구나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조직 유연화를 위해 몸소 나서는 인재들을 끌어모으겠다는 복안이다.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여 국민의 건강과 행복 증진, 나아가 인류의 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기업 이념을 실천하는데 앞장선 조욱제 대표. 그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니다.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싶고, 퇴근하고 싶지 않은 회사”를 그는 과연 이룰 것인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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