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워서 그래요.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하지만 ‘멋있다’ ‘예쁘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 큰 힘이 돼요.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용기도 생기고요. 오늘 제가 긴장한 기색이 엿보여서 그런지 더 자주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참 고마웠어요.
특히 마음에 들었던 착장이 있나요?
넥타이를 맸던 착장이요. 평상시 티셔츠에 청바지같이 편한 옷 위주로 입다 보니 그런 멋진 옷을 접할 일이 드물거든요. 지난 몇 달간 〈정숙한 세일즈〉의 정숙이로만 살다가 이렇게 화려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니 왠지 두근두근하더라고요. 덕분에 즐거웠어요.
카메라 앞에 서자마자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보고 내심 감탄했어요. 마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요.
비슷한 것 같아요. 딱히 어떤 인물이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한 건 아니지만, 사진의 분위기나 옷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인상을 내려고 했어요. 사진작가님이 잘 이끌어주시기도 했고요.
조금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즐겁게 보내셨나요?
촬영이 10월 말에 끝났어요. 촬영 후엔 보통 푹 쉬는 편이라 이번 생일은 집에서 상우 오빠(이상우)랑 막걸리 한잔 가볍게 하면서 소소하게 보냈죠. 제가 집에 있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은 출장이 많아서 집에 있질 못했거든요.
집에선 주로 뭐 하며 지내요?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원랜 발라드를 즐겨 들었는데 최근엔 뮤지컬 넘버를 듣고 있어요. 그렇다고 막 엄청 큰 스피커가 있고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휴대폰으로 틀어 놓고 들어요. 며칠 전엔 몇 시간 동안 베란다에 앉아 음악을 들었는데 어느새 노을이 지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갑자기 마음이 찌릿했어요.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라고 깨달았죠.
작품이 끝나도 여운이 오래 남는 편인가요?
오래가요.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제가 맡았던 캐릭터는 여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요. 촬영장에서 함께 고생한 다른 배우와 스태프를 만날 수 없는 것도 서운하고요. 〈정숙한 세일즈〉는 특히 더 각별했어요. 후반부엔 내가 정숙인지 정숙이가 나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정숙한 세일즈〉같이 여배우가 대거 등장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인 것 같아요.
촬영장 분위기가 되게 좋았어요. 올여름이 엄청 더웠잖아요. 그런데도 다들 밝은 얼굴로 서로 응원하며 연기했어요.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고맙죠. 금희 언니(김성령 분), 영복 언니(김선영 분)를 비롯해 주리(이세희 분), 도현(연우진 분)과 연기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지금도 배우 이름 대신 극 중 인물 이름으로 부르시네요.
아, 맞아요.(웃음) 촬영장에서 부르던 게 입에 붙어서 그래요. 심지어 저는 드라마 속 정숙이가 부러웠어요. 주변에 따스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면 그 삶은 행복할 게 분명하니까요.
레드 스웨이드 원피스 구찌. 블랙 롱부츠 펜디. 링 자크뮈스.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1992년을 배경으로 성인용품을 방문 판매하는 유부녀라는 설정이 독특하잖아요.
전작에서 연달아 강렬한 캐릭터를 맡았으니까 차기작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작품을 볼 때 캐릭터를 제일 중요하게 봐요. 4회까지 읽어보고 결정을 했는데, 읽자마자 정숙이라는 캐릭터에 꽂혔어요. 빨리 촬영을 시작해서 정숙이가 되고 싶을 정도로요. 터부처럼 여겨지는 성인용품이라는 아이템을 드라마의 메인 소재로 내세운다는 점도 신박했죠. 중간중간 녹아 있는 코믹한 요소도 마음에 들었고요. 전에 해보지 못한 연기라 도전하는 자세로 임했어요.
사무실에서 인터뷰 준비로 드라마를 보다가 웃음을 참느라 혼났어요.
저희도 촬영장에서 얼마나 자주 웃음이 터졌는지 몰라요. 금제마을 주민들의 맛깔나는 리액션 덕분에 웃음이 더 많이 터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평소 모습이 정숙이라는 캐릭터에 많이 묻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약간 ‘허당’ 같은 모습이 있어요. 예를 들어 4회에서 정숙이가 마사지를 받는 장면이 있는데 옆 사람이 한숨 자라고 하니까 “저는 한 번도 안 자봤어요. 공부할 때도요”라고 대답하곤 몇 초 후에 바로 코를 골아요. 나중에 작가님이랑 감독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제 모습을 보고 제가 정숙이랑 닮아 캐스팅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예능에 익숙하지 않아서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공교롭게 그런 모습을 보고 작품이 들어오기도 하는 걸 보면서 역시 매사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숙이가 마을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성인용품을 팔기 위해 펼쳤던 여러 판매 전략 중에 소연 씨가 보기에도 이건 정말 기발하다고 느낀 대목이 있나요?
2화에 다도를 접목시켜 물건을 파는 신이 있어요. 너무 신선했지만 동시에 큰 숙제였죠.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걱정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힘들었어요. 자칫하면 웃기지도 않고 어색한 신이 될 수 있거든요. 마침 주인영 배우님이 “아이구, 왜 이렇게 심각혀. 해방운동 한 줄 알겄네”라고 애드리브를 쳐줘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런 시의적절한 애드리브와 풍부한 리액션 덕에 그 장면이 빛날 수 있었죠.
소연 씨는 애드리브를 자주 하시나요?
거의 안 해요. 소심해서 할 용기가 없어요. 〈펜트하우스〉에선 딱 두 번 있었고, 이번 작품에서는 대사가 아니라 ‘어, 앗, 음’ 같은 의성어 정도만 애드리브로 했어요.
5화에서 정숙이가 바람피운 남편에게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꺼져주라”라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아이의 행복을 위해 못 이기듯 남편의 외도를 용서해주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대본 읽으면서 같은 마음이었어요.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며 “안 돼! 이혼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배우들도 대본을 받으면 시청자의 마음으로 읽게 돼요. 다행히 정숙이가 통쾌하게 이혼 통보를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그 장면을 두고 ‘이혼 프러포즈’라고 부르던데 적절한 표현 같아요. ‘지긋지긋하니까 헤어져!’라기보단 ‘앞으로 더 잘 살아갈 나 스스로를 응원해’라는 마음으로 그 대사를 뱉었거든요.
그다음 장면에 바로 정숙은 협의이혼신고서를 들고 법원을 걸어 나와요. 이혼을 하네 마네 질질 끄는 것 없이요.
요즘 드라마에 어울리는 전개인 것 같아요.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과 내용이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사실 배우는 주어진 대본에 충실할 따름이고 그걸 편집하는 건 감독님의 몫이죠. 정숙이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나서 싸우는 것도 찍었는데 방송에 나가지는 않았거든요. 뻔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저희 드라마랑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