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개 산업 업종별 단체로 이뤄진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은 21일 서울 자동차회관에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의 문제점 및 대응’을 주제로 제63회 산업발전포럼을 열었다.
현재 국회에서 이뤄지는 제조물책임법 개정 논의에 대한 산업계 우려를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올 5월 출범한 22대 국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8명의 의원(정준호·허영·채현일·서왕진·권성동·염태영·주호영·이헌승)이 관련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자동차를 비롯한 제품의 결함 의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제품 결함을 입증해야 제조사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현재 발의된 개정안은 페달 블랙박스 같은 영상자료나 기록이 있을 땐 그 제품 결함 여부를 제조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법조계에선 이 같은 법 개정이 소비자 구제라는 원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산업계에 부담만 가중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제조물 결함 입증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게 대부분 국가의 기본 원칙”이라며 “법 제정 땐 소비자의 결함 주장 남발로 불필요한 소송이 늘어 제조사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이 올 3월 관련법 개정으로 제품 결함의 추정 요건을 확대했으나, 이 과정에서도 소비자의 입증 책임 원칙은 유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영기 고려대 법학연구원 금융법센터 연구교수 역시 “현재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제품 결함에 따른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고, 대부분 외부 요인 복합 작용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밝혀졌다”며 “이 가운데 그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 전가하는 건 불필요한 소송 증가와 산업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
제조사가 제품 결함 없음을 입증하는 보고서를 내더라도 사람들이 이를 믿겠느냐는 반문도 뒤따랐다. 김기택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상무는 “중립적 국가기관인 국과수나 자동차안전연구원 조사 결과도 믿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제조사가 만든 보고서를 믿을지 의문”이라며 “앞선 30년 동안의 급발진 주장 사고에서 차량 결함 의심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국과수 조사 결과를 고려해 개정안 실효성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건면 성균과대 법학전문대 명예교수도 “급발진 문제를 규정 개정으로 해결하려면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마다 법률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는 자칫 법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안병하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품 결함 등은 피해자가 입증하는 게 책임법의 기본 요건이라는 원칙 아래 일부 요건만 삭제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제조사의 제품 자료 의무제출 항목도 영업비밀 노출 우려를 고려해 신청자와 제출 범위를 제한하는 식으로 신중히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재하 바이오니아 부사장은 “페달 오동작 방지 카메라나 비상제동장치(AEBS) 설치를 의무화하는 식으로 사고를 원천 방지할 수 있는 법안으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제조물 책임보험(PL) 가입 의무화 법안을 함께 추진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를 개최한 정만기 산업연합포럼 회장은 “주 52시간 근로제나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갈라파고스적 규제는 우리 기업이 자동차 같은 전통산업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점차 밀리는 주요 요인”이라며 “이번 개정안 역시 문제 해결은 못 하면서 기업의 시간·노력을 낭비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